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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학춤과 부산을 그린 풍경극, 가무악극 '춤바람 분데이'국립부산국악원(원장 이정엽)은 오는 10월 27일(금)~29(일) 평일 오후 7시30분, 주말 오후 3시 연악당에서 가무악극 <춤바람 분데이>를 3회 개최한다. 국립부산국악원 국악체험관 개관을 기념하고 영남권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한 작품 개발을 목표로 3년 여 만에 새로운 신작을 선보이는 무대다. 그동안 <자갈치아리랑(2011)>, <문디야 문디야(2014)>, <대청여관(2016)>, <구포당숲(2020)> 등 영남의 춤과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춤바람 분데이>는 1945년 해방을 맞고서 첫 3,1절을 기념하여 1946년 3월 1일 잊혀진 ‘동래야류’를 복원하여 춤판으로 벌였다는 故문장원(동래야류 보유자) 구술에 모티브를 받은 작품이다. 동래의 ‘래(萊)’가 거친 지역을 뜻하고 ‘부산(釜山)’이 가마솥 모양의 산을 말하니, 부산에 춤바람이 인다는 건 거친 현실을 훌쩍 날아오르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살아있는 ‘무형문화’ 유산 가치를 담아 거친 현실을 뛰어 올라 날개 짓하는 동래학춤 소재 <춤바람 분데이>는 살아있는 무형문화유산의 가치가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부산시무형문화재 ‘동래학춤’을 소재로 스토리텔링한 가무악극이다. 극의 내용은 광복 직후, 어수선한 시대배경 속에서 이름도 없이 뒷밀이로 불리던 한 청년이 우연히 ‘동래학춤’ 사진 한 장을 보며 삶이 송두째 바뀌어 춤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춤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창조적 감수성으로 만난 동래학춤의 날개 짓은 녹녹치 않은 현실세계에서 툭하고 불거져 나오는 염원이기도 하다. 그 흥으로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고 우리 모두에게 춤바람이 스며들기를 기대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한다. 작품은 총 6장으로 프롤로그/ 제1장 시시골뒷밀이, 학춤에 반하다/ 제2장 내력 있는 춤꾼을 만나다/ 제3장 춤바람 휘익~/ 제4장 무복을 만나다/ 제5장 춤이라는 목숨 줄 / 제6장 춤 춰!/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대극장 로비 국립부산국악원 국악체험관 개관 기념 <춤바람 분데이> 연계 사진전 열어 대극장 로비의 사진전 <춤바람 분데이>는 극의 시·공간적 흐름에 따라 구성해 ‘뒷밀이가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빛바랜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이번 사진전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 부산의 켜켜이 쌓인 퇴적 같은 역사의 풍경, 그 속에 지역민의 삶이 녹아있는 신명과 해학이 담긴 무형유산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놀이’와 ‘열린 극’ 형식을 통해 상상력 더욱 자극해 관객 교류성 확장, 놀이판으로 구축된 무대 공간 <춤바람 분데이>는 관객과 함께 마당놀이에서 볼 수 있는 연극적 약속의 놀이를 강화하고, 연주자를 여흥의 적극적인 동참자로 이끔과 동시에 시각적으로 무대와 객석을 연결하여 하나의 판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배가 시킨다. 음악 또한 독립성과 개별성이 강조되고, 즉흥의 시나위가 숨을 쉬며 관객의 추임새와 함께 흥을 돋우고 호흡하는 적극적인 교류를 취한다. <춤바람 분데이>는 출중한 창작진들과 국립부산국악원 최고의 출연진이 결합한 작품이다. 부산 출신 안경모 연출과 함께 대본 경민선, 작곡 신동일·김현섭, 안무 김수현, 무대디자인 도현진, 조명디자인 김영빈, 영상디자인 박준, 의상디자인 황연희, 소품디자인 송미영, 분장디자인 백지영 등 전문 제작진과 국립부산국악원 국악연주단 70여명의 출연진이 함께한다. 안경모 연출가는 "이번 작품은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으로 흥과 어깨춤, 박수와 추임새는 사랑의 표현이다. 부산시민들 모두가 춤의 흥으로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었으면 좋겠다.”며 연극적 놀이성을 강화하며 관객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이끌겠다는 연출의도를 밝혔다. 국립부산국악원장은 "개원15주년을 맞은 올해 시민들의 국악체험 공간으로 건립된 국악체험관 개관을 기념하며 마련한 작품이다. 2년 넘게 신규작품 개발과정을 거쳤고, <춤바람 분데이> 제목이 지닌 의미처럼 모두에게 춤바람이 스며들기를, 국악원이 영남권 국립기관으로써 충실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노년층도 청소년층도 아닌 중`장년층의 관람 부담을 덜어줄 파격적인 혜택도 마련했다. 개원15주년을 맞아 "부산시민 30%할인‘ 이벤트를 마련한다. 제휴사 할인(연지동 맛집, 에어부산 항공권)에도 3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할인폭을 높여 관람 부담을 덜었다. 문의)051-81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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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의 지역춤, 부산·경남지역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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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통춤 명인 학산(鶴山) 김덕명 생애와 춤세계3김덕명의 전통춤은 양산지역의 사찰(寺刹)과 권번(券番)에서 전승하던 독특한 춤들을 전수받아 오늘에 이르렀으며 후학들에게 전수시켰다. 더구나 사찰과 권번은 수행도장과 세속이라는 서로 상반된 환경이기에 어울릴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김덕명의 춤은 그런 상반된 춤 세계를 모두 포용하면서 조화를 이루면서도 남성적이고 영남적이고 사찰적인 춤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 김덕명의 춤의 장점이라고 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경남지방의 민속을 발굴하고 복원하고 전수하는 탁월한 악가무의 재능까지 겸비한 예인이며 재인이며 기인이었다. 이제 그가 남긴 춤과 민속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사찰계춤(4종), 기방계춤(11종), 민간계춤(13종) 3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1. 사찰계춤김덕명의 사찰계춤을 전승한 통도사는 경남양산시 하북면 영축산에 자리한 사찰로서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하지만 전승계보는 조선말기 철종시대까지의 무수(舞手)승려(魚山僧)는 알 수 없으며 계보가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고종시대의 이월호(李月浩, 1880~ ?)로부터 김설암(金雪岩, 1885~ ?)→신경수(新京壽, 1893~ 1965)→양대응(梁大應, 1897~ 1972), 그리고 김덕명에게 까지 이어진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1) 양산사찰학춤양산학춤은 1880년대 통도사의 이월호스님으로부터 사찰계에서 민간재인계로 4갈래로 전승되었다. ①김설암-신경수-양대응으로 사찰계 전승에서 민간재인 김덕명으로, ②사찰관련 민간예인계의 김두식(金斗植)-안화주(安化周, 1894- 1965)-황종열(黃鐘烈, 1897-1957)에서 김덕명으로, ③이주서-서상근에게 전승은 단절되었고. ④이주서–김동원 전승은 동래학춤으로 전승되었다.이렇게 양산에서 유일하게 통합전승된 김덕명 양산학춤은 그 사찰계 원형성과 민간재인계의 독특한 덧배기 춤사위와 교방계의 섬세한 바디(성향)가 깃들여져 예술성이 높은 춤으로 전승되었다. 학춤의 유래는 신라 선덕여왕 15년(AD646) 통도사가 창건된 이래 수륙재, 영산재, 종무대재 때 의례행사무로 승려들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왔다고 전한다. 김덕명의 양산사찰학춤은 24가지 춤사위를 4단계로 나눌 수 있으며, 단계별 의미로 학을 표현하면서 춤사위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1단계> 자연의 새가 하늘을 날고 땅으로 내려앉는다. 먹이를 찾기 위해 동료를 위협하며 존재감을 알린다. <2단계> 먹이를 찾기 위해 사방을 살피며 걷는다. 날개 짓하며 돌고 먹이를 고르며 으쓱인다. <3단계> 학은 먹이를 집고 죽이고 먹는다. 배부른 학은 쉴 터를 찾아 걸으며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기니 졸음이 온다. 주위 소음으로 깜짝 놀란 학은 일어서면서 기지개 편다. <4단계> 동료 학과 짝을 이루고 끌어 주며 동료에게 먹이를 찍어 먹여주고 노닐다 날아간다. 양산사찰학춤은 사대부차림의 모습에서 학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갓과 도포자락에서 나타나는 우아한 학의 날개 짓, 몸짓 등에서 학의 동태가 사실적으로 전달된다. 하체중심에서 이루어지는 도약과 집중, 배김새 등 굵직한 남성의 멋이 내재된 춤사위는 학춤에서만이 볼 수 있다.(박계현의 박사학위 논문발췌) 2) 지성승무지성승무는 일반적으로 성행하는 승무와 다른 의미를 지닌 독특한 춤이다. 춤의 근원은 인간중심적 구도, 순도한 도승과 상좌간의 기구한 운명적 사연으로 소산한 전통 불교 춤이다. 검정 승복에 붉은 가사(袈裟)의 강렬한 구도(求道)의 여한(餘恨)으로 중생구제의 부처님이 수행한 수많은 선행과 공덕, 정진 수행을 찬미하는 불교의 정통춤 지성승무는 장엄하면서도 신성한 몸놀림으로 재현되고 있다. 수도승이 수행 길목에서 부모를 잃은 동자를 구해 등에 업고 토굴로 돌아와 불도성상 십여년에 열반하신 스님의 액운을 풀어 소생케 하고 상좌는 스님과의 운명적인 이별을 해야 하는 슬픈 숙명을 적(赤)과 흑(黑)의 대비로 보여주는 춤사위가 전율스럽기까지 하며, 절정에 다달아 검은 허울, 붉은 허울 벗어 던지고 미친듯이 북을 두드리며 흰 적삼이 꿈결처럼 너울거리는 정서가 강렬한 춤이다. 춤의 순서는 <염불장단춤>꿈에서 깨어나서 스님을 살리고 떠나야하는 슬픔으로 흐느끼며 슬픔을 억제하는 춤사위다. <도드리장단춤> 상좌가 스님의 움직임을 엿보며 눈물 닦는 춤사위이다. 움직이는 스님에게 다가설 수 없는 괴로움이 묻어나온다. <타령장단춤>꿈속에 나타난 도승이 가르친 소생의 춤이다. 타령 춤을 출 때 스님이 좌정하기 시작하며 상좌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자진타령장단춤> 차츰 깨어나는 스님의 모습을 장삼자락 사이로 엿보며 눈물 닦는 춤사위다. <굿거리장단춤> 스님이 좌정하니 희비가 엇갈리며 떠날 준비를 하고 북을 울린다. 장삼–가사–홍띠–염주-고깔 등을 차례로 북에 걸은 후 스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울면서 떠난다. 이 춤에서 상좌가 떠나는 의미는 스님과 상좌가 서로 상극이라 소생하는 스님의 모습에게 다가설 수 없는 상좌의 아픔이 춤사위를 통해 나타난다. 이렇게 짜인 승무는 경기도 재인청승무와 강태홍류 승무 등 재인계통의 승무의 공통적인 성향이다. 지성승무의 복식은 스님의 평상복으로 우아한 자태를 나타내기 위해 고급소재에 의존하는 일반 승무와 상반되며, 승모와 소 가사, 염주, 홍 가사 등으로 구성된 소품에서 사찰의 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홍가사에는 원과 학, 토끼를 수놓았는데, 원은 우주를 나타내며 학은 태양, 토끼는 달을 의미하며 지구의 음양조화를 일컫는 것이다. 홍띠는 안태(安胎)의 의미가 내재된 것으로 김덕명의 춤에서만이 볼 수 있다. 북은 죽음을 의미하며 스님을 살린 상좌가 남으로 떠나며 생사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연등나례살풀이춤연등나례 살풀이춤은 고려대전 연등회 때 국태민안을 위한 고려 초부터 행해졌던 축귀의례(逐鬼儀禮)로서 잡귀잡신을 달래고 쫒아 단지 안에 가두어 땅에 묻는 신앙적 성격이 강한 춤이다. 중국에서 들어 온 나례는 고려 정종 6년(1040)에 나례의 기사가 보여 정종 대부터 계동대나례가 시행된 것으로 기술되었다.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민가와 궁중에서 잡귀와 사신(邪神)을 내쫒는 뜻으로 행해진 의식이었다. 연등나례살풀이는 푸닥거리를 시작으로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액을 풀고 자진모리를 통해 푸닥거리를 한다. 연등나례살풀이에서 액을 푸는 춤사위에서는 사신을 수건위에 올려서 어르고 달래는 춤사위와 거부하는 사신을 잡아서 푸닥거리로 정신을 잃게 한 후 단지에 가두어 땅에 묻으러 가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춤 순서는 <푸닥거리춤> 대나무와 살풀이 수건을 활용해서 축귀형식으로 뛰고 때리며 사신의 정신을 잃게 한다. <살풀이춤> 사신을 달랜다. 수건위에 사신을 올려놓고 어르고 달랜다. 고리 푸는 사위에서 사신과 무언의 대화로 달래지만 사신은 더욱 거센 반응을 보인다. 수건 하나에 사신을 달래며 위협하던 무당은 감춰둔 수건을 꺼낸다. <타령춤> 사신을 단지에 가두기 위해 두 개의 수건으로 사신을 유혹한다. 수건위에 앉은 사신을 진정시킨다. <자진모리춤> 두 개의 수건 위에 올려진 사신을 때리고 돌리며 푸닥거리로 정신을 잃게 한 후 수건을 던진다. 이때 무당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기절한 사신이 깨어나기 전 단지에 가두고 땅에 묻는다. 연등나례살풀이춤은 살풀이춤과 무속춤이 조화된 춤으로 춤사위의 전반적인 호흡은 푸닥거리에서 기를 돋우고 살풀이장단에서 깊은 호흡과 함께 몸을 느슨하게 풀어주며 무속의식을 엿볼 수 있는 특이함이 내재되었다. 무당의 복식과 소품으로 흰 치마저고리에 홍띠를 두르며 얹은 머리에 수건을 두른다. 한 개의 수건으로 춤을 추다 푸닥거리에서 두 개의 수건을 사용하는 것도 이 춤에서 만이 볼 수 있는 특이함이지만 경기지역 등 무속계 살풀이춤은 대체로 두 개를 사용한다. 대나무가지와 단지가 소품으로 활용된다. 4) 연등바라춤붉은 장삼을 휘날리며 원을 따라 도는 보살들의 양손에 갈라 쥔 동발을 부딪칠 때마다 장엄하면서도 저린 속을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바라춤이 탑돌이의 의미를 더해 가면 태평성대를 희망하는 구국불교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김덕명선생이 생전에 들려주는 염불소리와 함께 탑을 돌아간다. 동발이 짝을 찾아 울어댄다. 노구에도 좌중을 휘어잡는 선생의 염불 소리, 목탁 소리에 맞춰 탑돌이로 추는 바라군무는 불교의례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2. 교방계춤 김덕명이 기녀 김농주에게 전승받은 춤은 그녀가 개성권번 제1기생으로 기예를 익히고 30세 되면서 평양권번을 그만두고 양산권번에 정착한 후 유일하게 남긴 작품들이다. 해방 후 사회분위기에서 기녀가 생활 일선에 나설 수 있는 무대는 요릿집으로 한정되었고 재능이 뛰어난 기녀들은 연구소를 차려 후학들을 지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 김덕명과 함께 김농주의 춤을 배운 기녀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예술생활을 접으면서 김덕명만이 유일하게 김농주의 춤을 전승하게 되었다. 양산지역에서 권번의 춤은 세가지로 전승되는데, ①이주서-고수길의 계보로 이어지는 교방양반춤과 한량무가 전승되고 있었고, ②고수길이 김설암 스님에게 배운 신라장검무, ③고수길-김농주의 다양한 춤이 펼쳐진 것이다. 그녀가 보유한 전통춤은 교방타령무를 기본으로 하여 교방양반춤, 교방진연무, 교방살풀이, 소고춤, 한량무, 장기춤, 잉어춤, 신선무, 부마도의 등 다양한 작품이 있었다. 1) 교방타령(敎坊打令)춤교방타령은 교방의 전문 예기들의 기초 교양과목 증 하나로 양반들과 어울려 여흥으로 추던 춤이다. 춤사위는 남성적이며 부드러운 멋이 조화로우며 절도 있고 흥겨운 속멋이 내재된 품격 있는 춤이다. 타령이란 우리 고유 전통음악의 곡조로서 판소리, 민요, 잡가 등에 많이 쓰이는 순수 전통 고전의 음률이다. 이 타령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춤 선은 전, 후를 오가고 공간에 제약받지 않는 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춤은 한량과 기녀가 마주보고 추는 형식으로 한량과 기녀가 서로 추파를 던지고 공감형성 되는 춤사위가 조화롭게 나타난다. 교방타령에서 연결되는 굿거리 춤사위는 1983년 이후 제자들에게 전승되지 않았다. 교방타령은 양반과 기녀가 어울리며 추는 춤으로 무게감이 있다면 굿거리 춤은 기녀가 화답하는 춤이다. 여성의 춤이면서 남성적인 멋이 묻어 나오며 발 디딤새에서 사뿐거리는 멋이 이 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춤사위 순서는 마주보고 서는 사위→팔 감는 사위→우, 좌 향 감는 사위→감아올리는 사위 →상 하 평행 반원사위→평 솟대사위→흥 돋우며 올리는 사위→상, 하 눌려서 젖히는 사위→손목 돌리며 활개 펴는 사위→양팔 상하 움직이는 사위→상하 팔 감는 사위→흥 올리며 전후 감는 사위→앞뒤 감고 교차하는 사위→평사위→사선 끌어올리는 사위→열림 사위→외발 서고 팔 감는 사위→사선 회전사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춤의 복식은, 남성은 흰 바지저고리, 검정조끼, 상투에 흰 수건을 묶고, 여성은 얹은 머리 또는 명주수건을 두루며, 자주색 호장저고리, 검정치마를 입고 소품으로 귀주머니를 단 자주색 허리끈을 맨다. 2) 교방양반춤(호걸양반춤)교방양반춤은 양반이 관기들과 여흥(餘興)으로 즐겨 추던 춤으로 단아하며 사대부(士大夫) 양반들의 의젓한 귀품과 천하를 눈 아래로 보며 남성의 기백과 근엄함, 청초하고 담백함이 돋보이며 해학(諧謔)이 있는 양반의 기세와 품격(品格)을 느낄 수 있다. 춤사위에서 표출되는 무언의 속삭임은 사실적으로 전달되며 이춤은 교방의 전문예인들에 의해 창안되었다. 장죽과 부채를 활용한 춤사위에는 추파 던지는 사위, 햇볕가리는 사위, 공감형성사위, 위엄사위, 엿보는 사위 등 표현이 다양하다. 춤의 특징은 남성의 모습이 강하며 다양한 춤사위에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팔의 움직임은 자유로우나 절제된 멋이 나타난다. 좁은 보폭과 굴신걸음으로 연결되며 기를 모우고 풀면서 안정된 걸음걸이로 중심을 잡는다. 부채와 장죽을 활용하고 도포자락의 움직임이 조화롭게 나타나는 춤사위는 동적이며 우아한 선학을 연상하게 한다. 도약과 디딤의 폭이 넓고 깊으며 하체의 강한 힘을 필요로 한다. 춤사위 순서는 장죽물고 바라보는 사위→양팔 펴서 감아올리는 사위→추파 던지는 사위→상 하 반원 평행사위→양 팔 들고 걷는 사위→햇볕가리며 엿보는 사위→활개 펴는 사위→으쓱이는 사위→상하 휘젓는 사위→위엄 주는 사위→부채 펴서 엿보는 사위→뒤축 굴림 사위→팔 돌림사위→선별하는 사위→옆걸음 사위로 이어진다. 춤의 복식과 소품은 흰 바지저고리에 대님, 행전, 속 두루마기, 황금색 또는 옥색도포를 입고, 소품으로 상투, 검정 갓, 장죽, 부채 등으로 구성된다. 3) 한량무(閑良舞)한량무에서는 한량과 색시, 승려의 만남은 삼각구도의 갈등으로 희비가 엇갈린다. 이는 알력이 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해학적이며 흥미진진함과 문란한 단면을 도출한 풍자예술로 인식된다. 한량무는 조선후기 관기에 의해 창안되고 기방춤으로 성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한량무에서 비중이 큰 인물은 승려의 출현이다. 승려는 한량과 색시와 함께 삼각관계의 중심에 선 인물이며 탈춤의 노장과장에서도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승려는 등장 후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파계하는 과정에서 종교인으로서의 품위와 가치를 잃게 된다. 이 춤에서 승려는 수도승의 참모습이 아닌 파계승(破戒僧)으로서의 모습은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배불(排佛)정책 내지 억불(抑佛)정책의 일환에서 승려의 인격을 실추(失墜)시키며. 탈춤이 나 각종 민속춤에서 파계승(破戒僧)으로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의하여 승려들은 환속하여 민간의 재인이나 광대와 어울리게 되면서 승광대(僧廣大)가 되어 사당패(祠堂牌)가 성립되었다. 불교에서 형성된 춤의 대부분은 승광대에 의해 창안된 것이며, 19세기 말에는 사찰에서 춤을 금지하였으며 오늘날 전승되는 각종 민속춤이나 탈춤, 광대놀음에서 승려는 파계승으로 등장시키며 삼각관계로 인해 타락하며 품위를 잃게 된다. 한량무의 배역은 한량, 승려, 색시, 별감, 주모, 마당쇠, 상좌 등 7인이 등장하여 각 배역의 춤에서는 욕망-허망함-깨달음-화합하는 단계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김덕명은 1924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양산 통도사에 입사하면서 춤의 인생이 시작되었고, 1934년 평양기생 김농주와의 만남으로부터 권번춤의 진수를 전수받았다. 그리하여 김덕명춤의 세계는 사찰춤과 권번춤으로 크게 대별된다. 그는 일반인으로 사찰춤을 계승한 사람이며 남성으로서 기생들의 춤인 권번춤을 전승받았다는 점이 일반 춤꾼들과는 다른 특이점이다. 그의 사찰춤은 ‘양산사찰학춤’, ‘지성승무’, ‘연등나례살풀이춤’, ‘신라장검무’, ‘연등바라춤’ 등이 있으며, 그의 권번춤으로는 ‘교방타령’, ‘교방양반춤’, ‘한량무’, ‘교방진연무’ 등 다양한 춤을 보유하고 있다.그리고 김덕명의 춤인생 경로는 출생지인 양산 동면에서 시작되어 장년기의 진주, 노년기의 김해를 거쳐 다시 양산으로 이어진다. 그의 독특한 춤사위는 춤 인생이 시작된 통도사에서 스님에게 남성의 활기찬 춤사위를 익힌 후 평양명기 김농주로부터 부드럽고 우아한 춤사위를 학습하면서 그에게서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춤사위가 생성된 것이다. 대처승인 양대응·신경수스님은 상좌들에게 춤을 지도하며 각종 재를 도맡아서 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다. 그러나 활성화 되어야 할 사찰예술이 단절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재의식을 통제하는 조선총독부의 사찰령(1911년)과 그 이듬해 제정된 본말사법(本末寺法)에 따라 범패가 금지되었고, 해방 후 6.25전란 등 시대 변화와 불교정화운동에 의해 대처승을 정리함으로서 양대응과 신경수 스님도 통도사를 떠나게 되면서 차츰 사찰예술은 종적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통도사의 춤을 보유한 김덕명은 불교중앙문화원 예술원장의 신분에서 사찰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일이 잦았고 그와 함께하는 행각스님(魚山僧)의 범패와 바라춤, 승무, 학춤, 연등나례살풀이춤 등은 신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통도사에서 전승된 춤은 통상적 사찰의 춤으로 알려진 작법이나 나비춤과 달리 독창적인 춤이 전승되었다는 것이 특이하며, 전승자 신분이 승려에서 민간예인으로 전이됨으로서 전승단절을 막고 계승할 수 있었다는 것이 변환기인 근대무용사에서 중요한 점이며, 그 전환점에 김덕명이 서있다는 것이 무용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어야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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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전통춤 명인 학산(鶴山) 김덕명 생애와 춤세계 221세기 밀레니엄시대(2000년)를 맞이한 김덕명(1924~2015)옹은 어느덧 고희(古稀)도 훨씬 지난 76세였지만 노년기의 공연활동과 지역민속발굴과 지도에는 장년 못지않게 원숙함과 열정이 넘쳐있었다. 2000년 4월19일 <국립극장 50주년 국립무용단 제79회 정기공연> 양산학춤 특별초청공연으로 영남춤 명인 ‘서울 나들이’에 초청되어 갈채를 받았다. 한국경제신문(4.12) 예고기사와 국제신문 디지털뉴스부(4.19)에 네 사람이 펼치는 네 가지 색깔의 춤판에 대한 소개에서 "소리는 호남, 춤은 영남이라는 말은 예로부터 풍류의 정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영남춤이 한국춤의 주류에서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춤이 중앙집중 되었고, 무형문화재 지정과정에서 호남쪽 춤이 주요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4人4色 나흘간의 춤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영남춤이 처음으로 서울의 국립극장 무대에 선다. 이번 공연의 4색이 영남춤판의 주인공은 영남춤의 명인들인 김덕명, 김온경, 이윤석, 하용부이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덕명씨는 양산 사찰학춤을 들고 나온다. 외로이 양산학춤을 지켜온 김씨는 이번 무대에서 이 춤의 원형을 선보였다”라고 알렸다. 이어서 5월 16·17일 호암아트홀무대에 오르게 되자 각종 매스콤에 대서특필하였다. 서울신문(5.2)기사 ‘인간문화재 3人의 전통춤 진수’와 조선일보(5.11) ‘인간문화재 한 무대에’ 기사에는 ‘사상 유례 없을 대원로들의 합동공연이 마련된 무대는 오는 16·17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제18회 명무명인전>, 세 노옹은 첫날 잇따라 무대에 선다’라고 하였고,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보유자인 김덕명옹은 ‘양산사찰학춤’을 춘다.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된 통도사에서 대대로 계승되었다는 이 춤은 지난 87년 일본 NHK의 세계춤 종합평가에서 ‘춤의 황제’라는 극찬을 들었다"라고 알렸다. 2002년 9월 6~7일, 공연기획사 이일공과 호암아트홀이 주최하고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세계민족무용연구소가 후원하는 행사로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 공연이 있었는데, 각종 매스콤에 예고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덩실 덩실 얼쑤! 8인 男舞 한마당,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 ‘남자들이 추는 정통 민속춤이 한자리에 모인다. 남무(男舞)부재 현상 속에 민속무용은 그나마 궁중무용에 비하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해 왔다는 점에서 더욱 화제다. 특히 문장원·황재기·김덕명은 80대로 민속춤의 산증인이다’ , ‘<남무(男舞), 춤추는 처용 아비들>에서 멋과 흥으로 대변되던 우리 춤의 진수를 선보인다.’라고 했으며, ‘양산사찰학춤의 김덕명(80)은 일본 기생의 잉어춤 등에 능하고 학춤은 국내 최고라는 평이다. 학이 땅에 내려앉아 먹이를 먹고 암놈을 희롱하는 행동을 표현한 춤으로 도포와 갓을 쓰고 춘다.’(서울신문, 8. 29) 그밖에도 연합뉴스(8.29), 한국경제(8,29), 현대불교(8.20), 조선일보(9.5) 등에 예고기사로 크게 보도되었다. 춤판에서 남자춤꾼들의 모습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전통무용은 현대무용이나 발레에 비해 '남무부재 현상'이 더욱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직 춤에 한 평생을 걸어온 8명의 남성춤꾼들이 모처럼 한데 모여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인다. 오는 9월6일, 7일 이틀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펼쳐지는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이 화제의 공연이다. 무대에 오르는 8명의 춤꾼중 셋은 이미 80대의 고령으로 이번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리만 만들어지면 어디에서든 어깨를 들썩이며 일품 춤사위를 뽑아내는 '끼'와 '열정'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덕명옹(80)은 고고한 학의 자태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양산학춤을 선사한다. 훨훨 날다가 내려앉아 두루두루 살피고 먹이를 휙 낚아채는 학의 모습을 선비의 차림으로 유장하게 표현해 낸다.’(한국경제, 8.29) ‘제도권 무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 다양한 한국 전통춤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된다. 농악판, 탈춤판, 사랑방 등 선조들의 삶 주변에서 흥겨운 '놀이'로 추었던 춤의 원형질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아울러 호방한 남성춤을 만나기 어려운 무용계 현실에 비춰볼 때도 분명 이색적인 무대다.(현대불교, 8.29) ‘공연 제목은 설화 속 춤꾼 '처용'에서 따왔다. 출연자들은 공연장이나 학교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전통춤을 지켜온 명인들이다. '무용가'로 불린 적이 없지만 자신의 춤세계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남다른 사람들로, 생활터전의 주변에서 명맥을 이어온 춤의 자유로운 멋과 흥을 느낄 수 있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인 김덕명(80)씨가 선보이는 양산사찰학춤은 양산 통도사에서 전승돼 왔다는 학춤이다. 선비의 평상복인 도포에 갓을 쓴 채로 먹이를 살피다 휙 낚아채는 학을 재현한다. 김씨는 한량을 넘어선 직업 춤꾼으로 양반춤. 지성승무. 한량무. 나례무 등 다양한 춤사위를 보유하고 있다.(연합뉴스, 5.29) ‘무대에 오르는 춤을 보자. 승무, 살풀이, 태평무 등에 비해서는 대접이 형편없는 춤들이다. 그러나 명인들은 이에 연연하지 않고 너울너울 춤추며 한 세상을 보내고 있다. 당대 최고 즉흥춤이라는 문장원의 동래입춤, 맵시있는 자태가 빛나는 황재기의 고깔 소고춤, 한 마리 고고한 학을 연상시키는 김덕명의 양산 사찰학춤, 다양한 디딤의 묘미가 살아있는 정인삼의 진쇠춤, 굵고 시원한 마당춤…. 김덕명(78)옹은 어릴 적 부모가 보낸 절에서 도망쳐 나와 농악패를 따라 나섰다가 춤과 인연을 맺었다.’(조선일보, 9. 5) 2003년 11월 22일에는 <팔십인생의 춤> 학산 김덕명 80인생 정통고전춤 발표회(양산)가 양산문예회관에서 있었다. ‘양산문화원이 주최하고 양산학춤보존회가 주관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통도사의 학춤, 승무, 바라춤과 전통 고전춤을 습득하여 올바르게 전승하고 한량무를 발굴하여 경남도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학산의 열정과 그 공을 기리기 위한 무대로 그 문화생들이 자리를 마련했다. 순수 정통 학산 김덕명류의 팔십 인생의 춤이 선보이는 이번 무대에는 ‘지성승무’와 ‘양산학춤’, ‘한량무 극무’등 주위에서 쉽게 감상하기 힘든 10개의 작품이 공연되며 학산 김덕명도 직접 무대에 선다. 학산 김덕명은 양산시 동면출신으로 양산학춤을 오늘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장본인이며 불교 중앙문화예술원 원장과 김해시립전통무용단 단장, 국악협회 경남도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다양한 춤사위를 선보여 왔는가 하면 후진양성에도 평생을 몸 바쳐 온 예인이다.(경남일보, 11.21) '지난 94년부터 양산학춤과 연등바라춤을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양산시와 경남도에 여러번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거절당했다'며 '내가 죽기 전에 학춤과 연등바라춤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을 꼭 보고싶다'고 말했다. 또 '전국에 걸쳐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내가(김옹) 가진 28가지의 춤을 표현하는 제자는 아직 없어 죽기 전에 다 전수할 수 있을지 항상 불안하다'고 걱정한다.‘ (부산일보, 11.28) ‘양산문화원이 주최하고 양산학춤보존회가 주관한 이번 공연은 통도사의 학춤, 승무, 바라춤과 전통 고전춤을 전승하고 한량무를 발굴하여 도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학산의 열정과 그 공을 기리기 위해 문하생들이 마련했다. 이번 무대에는 '지성승무'와 '양산학춤', '한량무 극무'등 주위에서 쉽게 감상하기 힘든 10개의 작품이 공연되며 학산 김덕명 선생도 직접 무대에 올랐다. 불교 중앙문화예술원 원장과 김해시립전통무용단 단장, 국악협회경남도지부장 등을 역임한 학산 김덕명 선생은 양산사찰학춤, 연등바라춤, 지성승무 등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으로 문화재 지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후진양성에 매진하고 있다.(현대불교, 12.1) 2005년 제8회 세계무용축제에서 다시 <전무후무(全舞珝舞)> 국보급 춤의 명인 6명이 무대에 올렸을 때에도 김덕명은 빠지지 않고 양산학춤을 추었다. ‘<전무후무(全舞珝舞, 珝는 옥이름 후)>. 춤의 명인 6명이 한 무대에 오른다. 강선영의 태평무, 김덕명의 양산학춤, 김수악의 교방굿거리춤, 문장원의 입춤, 이매방의 승무, 장금도의 민살풀이춤. 가장 젊은 장금도(77)부터 최고령 문장원(88)까지, 이들의 평균 연령은 82세다. 김덕명 양산학춤은 너울너울 학을 닮아가는 한량을 그린다.’(조선일보, 9.22) ‘김덕명의 인터뷰 중 "학춤 출 땐 정신부터 학이 돼요. 요즘 춤추는 사람들은 장식에 치중하느라 뿌리를 놓치는 것 같아. 우리끼리야 누가 잘 하나 따져 뭘 해. 다들 춤에 미쳤지. 그렇지 않고서야 80 넘어 90이 다 될 때까지 고생고생 하며 춤출 수 있나. 앞으로 열흘 몸 건사 잘 해서 무대에서 구부러지지만 마시소들!(웃음)”(조선일보, 9.28) ‘걷는 것은 두려우나 춤은 두렵지 않다…. 지난 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오늘 하루를 위해서 일생을 장만해온 것처럼, 몸이 아니라 춤만 남았다….” 어느 이의 말처럼 전무후무한 공연이었다. 젊은날의 그것만 했으련만, 80년 묵은 육신에서 곰삭은 춤 맛은 감히 평할 것이 아니었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 내외 관람하면서 "아주 신명이 났다”며 관람 소감을 밝혔다.’(경향신문, 10.10)(양산신문, 10, 5) 2008년 12월 5일 영남명무전 <무림평전(舞林平定)>이 통영시민회관 대극장에 있었다. 경남도의 전통 춤판을 지켜가는 남성 5인방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덕명, 이윤석, 하용부, 김선옥, 김홍종 선생이 영남명무전 ‘무림평정’(舞林評定)으로 다음달 5일 통영시민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경남도 전통춤계의 큰 어른들인 다섯 선생은 전국전통예술계에서도 반열에 올라있는 춤꾼들이자 광대들이다. 이들 다섯 춤꾼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지난달 람사르 총회 기념 인간문화재 명무전에서 한 무대 오른 후 이번에 통영을 찾게 됐다. 우리나라 대표 춤꾼이자 큰 선생인 김덕명 선생은 이번 공연에서 조선시대 양반들의 곧음과 부드러움, 세심함과 단아함을 표현하는 호걸 양반춤으로 통영시민들과 만난다.<경남매일, 11월 24일> 호걸양반춤의 김덕명, 채상소고춤의 김선옥, 통영문둥북춤의 김홍종, 덧뵈기춤의 이윤석, 밀양북춤의 하용부. 경남 전통 춤판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는 명인들의 춤사위가 통영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이번 공연제목 ‘무림평정(舞林評定)’에는 다른 깊은 속뜻이 있다고 한다. 연출을 맡은 김홍종 선생은 "춤판을 평정한다는 제 잘난 멋의 과시가 아니라, 한 가지 분야에서 올곧게 정도를 지키며 살다보면 누구나 존경을 받아야 하는 세상의 이치를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속에는 김덕명 선생과 같은 선배를 아울러 모시고 싶은 후배의 마음도 함께 들어 있다고 한다.<양산신문, 12. 21> 구순의 나이에도 정정한 목소리와 자태는 제자들을 사로잡았다. 학산 선생은 공연이 아닌 발표회라는 것도 강조했다. "공연은 돈 받고 보여주는 거야. 발표회는 연습 결과를 보여주고, 관객들이 춤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거지." 양산학춤보존회는 구시대, 장악원 등 전문 예술인에 의해 생성돼, 1930년대에 평양 명기 김농주에 의해 양산권번에 정착됐다. 학산 선생에 의해 이어지고 있는 호걸양반춤의 호탕하고 의기 넘치는 춤도 선보였다. 구운몽을 바탕으로 만든 무언 무용극인 한량무의 해학은 웃음 을 연발하게 했다.<양산신문, 12.4> 2014년 3월20일 진주전통예술회관에서 학산 김덕명선생의 제2회 한량무발표회를 가졌다.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한량무’ 공연은 학산 김덕명선생의 가르침으로 우리나라에 하니밖에 없는 일곱배역이 있는 극으로 된 무용이다. 한량, 색시, 상좌, 주모, 승려, 별감, 마당쇠로 총 9마당으로 구성돼 있다.<진주인터넷신문, 2014. 3.20> 이상에 소개한 신문기사 외에도 많은 공연활동과 전수활동이 있었으나 지면관계로 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구십대에 이르기까지 중앙무대와 향토무대를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무대를 장식하며 남성다운 춤, 영남덧뵈기춤, 사찰계춤의 진수를 보여주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김덕명은 양산 통도사와 양산 권번에서 전승된 독특한 춤사위를 지닌 독보적인 춤꾼이다. 그런데 양산학춤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보류된 안타까움 속에 있을 때 진주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가 진주와 연을 맺게 된 것은 마지막 기녀출신들의 노력으로부터였다. 당시 김덕명은 그가 소원하던 학춤이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에서 보류된 후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었을 때 연로한 진주의 보유자들이 김덕명을 찾아 지속적인 부탁을 했고 또한 진주는 전국 제일의 종합예술행사인 개천예술제가 개최되는 예향이라는 것과 그의 학춤발굴자였던 서국영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이다. 진주의 예술이 기녀들에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교방이 해체된 후 1913년 기녀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서 진주기생조합을 결성하였다. 이어 1928년 4월, 김창윤에 의해 진주권번이 운영되었으나 부실하였다가 1938년‘최치환’에 의해 진주예기권번이 창립되었다. 진주권번의 춤 선생인 최완자(崔完子)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주로 감영에 선발되어 궁중연희에 참가했다. 그녀의 제자 김수악(金壽岳), 강귀례(姜貴禮), 강순금(姜順今)등이 1967년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김덕명을 모셔와 1976년부터 예향 진주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79년 5월2일자로 경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한량무가 지정되면서 보유자 김덕명 외 7명으로 등재되었다. 김덕명의 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뜻 깊고 빛나는 업적은 진주와 양산(梁山)지역에서 무형문화재를 전승시켰으며, 민속놀이 발굴과 전승에도 큰 공로를 김해지역에서 문화예술의 밑거름으로 남긴 가락오광대와 석전놀이, 김해농요 등을 발굴 전수시킨 흔적을 볼 때 그를 다재다능한 예술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1990년 후반, 양산시 덕계리에서 망시곱배기놀이 발굴하여 경남무형문화재 제23호 웅상장원놀이로 지정되는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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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전통춤 명인 학산(鶴山) 김덕명 생애와 춤세계 1양산학춤은 2014년과 2016년, 2017년 등 지금까지 네 차례 무형문화재 지정 시도가 있었지만 심사 단계에서 신청자에 대한 관련 단체 전체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제대로 심사도 받지 못하고 지정이 무산된 것이다. 양산문화원은 양산학춤 전수회관 건립도 추진하는 등 양산학춤을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문화자산으로 적극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산학춤은 통도사에서 전래해 지역에서 동면 출신의 학산 김덕명 옹이 전수해 민간 계보로 전승된 지역 고유 춤으로써 선비 사상을 강조한다. 이병옥 교수가 김덕명의 중후반의 행적을 살피고 예술성과 학술적 가치를 고찰하기로 한다.(편집자 주) 중반의 시련을 딛고 일어선 영남 명무 1975년 11월 5일 제6회 김덕명 전통고전(춤)전수자 발표공연을 부산대학교 대극장에서 마치고 한량무 강습을 할 때 진주팔검무회가 찾아와 진주시립국악원 및 진주 팔검무회의 상임사범을 부탁하여 승낙하게 되었다. 이듬해 1976년부터 1981까지 5년간 진주에서 전통춤을 가르치게 되었다. 1975년 제6회 발표회를 마친 후 그는 모처럼 동래야류 공연이 있어 전수관을 찾아갔다. 그동안 그들과 친분이 있어 공연 후 뒤풀이로 학춤을 선보였던 것인데 때마침 동래야류 공연을 참관하려 방문한 문화재 전문위원 서국영(徐國英)은 그의 학춤을 보고 탄복했다. 그는 즉시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함께 활동하는 김천흥(金千興, 1909~2007, 처용무 보유자)에게 발굴할 가치기 있는 학춤을 찾았다고 부산에 올 것을 알리자 소식을 듣고 증인확보를 위해 수제자 이흥구(李興九, 1940~ , 학연화대무 보유자)와 함께 부산에 왔다. 그리하여 1975년 김덕명은 김천흥 일행과 부산 동래별장에서 춤판을 벌였다. 3일 동안 이어진 그의 춤은 독특한 멋이 담긴 춤사위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절로 흥이 났다. 김천흥도 흥이나 직접 궁중정재 춘앵무와 학춤을 추었으며, 이흥구는 김덕명의 남성적이며 호방한 학춤에 반하여 기록수첩을 잃어버릴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부산·경남지방에서 전승되는 학춤에는 양산지역 학춤과 이미 1972년 9월 19일 부산시 무형문화재 3호로 지정된 동래학춤 등 두 종류가 있었다. 서국영, 김천흥 조사자들의 공동작업(1975.7.25.~8.25까지 조사활동)으로 이듬해인 1976년 12월 7일 『(양산)사찰학춤』(중요무형문화재 보고 제122호, 1976년5월 보고서 제출)의 무보를 수록한 조사보고서를 문화재 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제출하였다. 여기서 양산사찰학춤의 유래(寺刹鶴춤의 由來)에 대해 수록내용 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사찰학춤에 관한 문헌은 찾아볼 길이 없고 다만 조사할 수 있는 무수(舞手)들을 알아내어 그 계보를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양산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646년,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창건된 이래 그 어느 때부터 인지는 모르나 대재(大齋)행사 때나 종무(宗務)총회 시에 의례(儀禮)행사로서 승무와 학춤을 대대로 계승해 왔다는 말을 명무승려인 신경수(辛景壽, 1893~1965)로부터 들었다고 하는 보광(寶光)중학교 교장 및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김말복(金末福)의 증언을 얻은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조말엽 청종 시대까지의 무수(舞手)승려는 미상(未詳)이나 고종시대인 1980년부터는 이월호(李月浩, 당시 어산종장(魚山宗長)), 1980년대부터는 김설암(金雪岩), 그리고 1920년 이후에는 전술한 신경수와 양대응(梁大應, 1897~1972)등으로 승무와 학춤이 계승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도사에서는 특히 사찰학춤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김말복은 신경수, 양대응의 학춤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하며, 신경수는 사하(寺下) 부락인 신평리(新坪里)에 나와서 남소석(南小錫, 1904~1960)의 꽹과리 장단에 맞추어 학춤을 추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대로 신경수의 사찰학춤이 사하부락에 흘러나오기 이전에 이미 양산군(梁山郡) 동면(東面) 내송리(內訟里)에 학춤이 계승되어 왔는바 향토무용에 관심이 있었던 안화주(安化周, 당시 83세)의 증언에 의하면 동(同) 내송리 거주 김두식(金斗熄, 1843~1930)은 당시 곡수(穀收)운반 관계로 약 40세에 통도사 출입을 한 분으로서 향토무에 자질이 있어 사찰에서 학춤을 즐겨 전수받아 추었으며, 이 춤을 다시 동(同) 부락거주 황종렬(黃鐘烈, 1897~1957)에게 전수했고, 이어 김덕명(52세, 김두식씨의 손자)에게 전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앞에서 언급한 신경수의 사찰학춤의 춤사위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하는 김말복은 현재 예능보유자인 김덕명의 학춤사위를 보고 통도사의 사찰학춤사위와 흡사하다고 인정하므로 김덕명의 학춤은 분명히 통도사 사찰학춤의 계열임을 결정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양산군 동면 내송리에서 전해 온 이 학춤은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추석은 물론 이 이외에도 부락 경사가 있을 때마다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통도사에서는 1935년경부터 이 학춤의 자취가 없어지고 내송리(內訟里)의 민간계(民間系) 학춤만이 겨우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그러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그에게는 평생의 숙원이었지만 1976년 김덕명의 학춤이 문화재지정에서 보류되었다. 그의 학춤이 보류된 이유로는 사찰학춤의 사찰계의 단절과 민간(재인)계로의 명맥 전승, 명칭의 불확실성(양산사찰학춤, 사찰학춤, 양산학춤 등) 과거 친구의 권유로 동래야류의 이수자에 등록된 것이 사적인 민원으로 영향을 미친 것 등을 들 수 있겠다. 물론 그의 학춤은 조사과정에서 통도사 주지승을 지낸 김말복(金末福)을 중심으로 월하(月下)스님, 성파(盛波)스님, 김동만(金動萬)등 증언자들을 통해 전승경로가 이미 확인되었던 것이며, 양산사찰학춤이란 명칭도 학춤이 양산 통도사에서 전승된 춤이라는 이유에서 발굴조사자들이 정한 것이었다. 전문위원들이 그의 학춤조사를 위해 생존한 증언자들을 찾아다니며 채록할 때 통도사에서 비중이 큰 스님(경봉스님)의 증언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번복된 증언이 반대 세력을 통해 제출되었고, 경봉스님의 고백으로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번복했는데, 그렇게 해야만 김덕명에게 유리한 일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전문위원들이 조사 보고한 학춤은 지정 심의에서 보류되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덕명은 1977년 12월 8일에 문화계의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양산사찰학춤’의 특별 강습회 및 실연을 선보이게 되었다.여기에 참가하였던 무용평론가 박용구는 "묻혀있는 우리춤이 제대로 발굴만 되면 훌륭하고 좋은 점이 이와 같이 다양하다”고 감탄했으며, 역시 무용평론가인 조동화도 "어찌 인간으로서 그토록 잘 출 수 있는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예능보유자 김천흥도 흥에 겨운 나머지 그가 춤을 출 때는 손수 장고를 잡으셨다고 하며 덩실덩실 같이 춤을 추실 때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때까지는 동래야류에도 친분을 유지하고 하고 있었지만 지역적인 대립으로 인하여 중도에서 인연을 아주 끊고 말았다.그리고 비록 무형문화재 지정은 보류되었지만 양산사찰학춤 발굴조사로 인하여 김덕명은 중앙의 원로예술인들의 관심을 더욱 받게 되었고, 동연배의 예술인들과 교제하며 입지를 넓혀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특히 김천흥과 성경린(成慶麟, 1911~2008, 이왕직 아악양성소 수료, 국악원장 역임)은 그의 학춤에 매료되어 영남지방의 독특한 덧배기춤을 보급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를 중앙무대의 예술인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던 직접적인 도화선은 1976년 4월 16일 서울YMCA에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특별 초청으로 시연(양산학춤)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1976년 6월 3일 주위의 권유로 제2회 전주대사습대회에 52세의 나이로 경남 춤꾼으로 출전했고, 심사위원인 김천흥, 최현, 김숙자 등은 이미 서울 시연회에서 그의 춤을 보고 탄복한 바 있다. 양반춤에 내재된 남성의 멋이 담긴 춤사위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서 장내가 떠들썩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심사위원들이 그를 찾아와서 격려할 정도였고 그의 춤이 경연대회에서 큰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한 것이었다. 그 후, 1976년 12월 8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초청으로 2차 시연회를 갖게 되면서 그의 춤은 전승보급에 발돋움하였다. 그가 ‘교방춤’(교방타령굿거리, 교방 살풀이, 교방양반춤)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하면서 오늘날 무용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교방’ 명칭을 유행시킨 춤꾼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77년 4월 13일 서울 YMCA 제3회 전통무용 발표회에서 춤을 추었을 때는 400여명의 관객이 모두 찬탄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때 춘 춤은 양산사찰학춤을 비롯한 지성승무, 한량무 등이었다. 그 뒤 한양대학과 이화여대에서 10여 일 간의 강습회를 갖기도 했고, 같은 해 6월6일에는 양산에 있는 양산극장에서 방위성금 모으기를 위한 고전무용 발표회를 열어 많은 사람들의 호의적인 반응과 함께 호평을 듣기도 했다. 그의 춤에 대한 평으로는 1976년 11월11일자 국제신문에 "양산사찰학춤 문화재 지정설”이라는 제목으로, 1977년 6월 6일자 부산일보에 "20사위에 깃든 庶民들의 애환”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고, 1978년 『산업한국』 3월호에서는 "양산학춤에 대한 역사적 고찰 및 문화재 지정설”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소개된 바 있었다. 1977년 7월에는 진주무용인들의 청을 받아 진주 민속예술보존협회의 전통무용부문 선생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78년 4월에는 진주시립국악원에서도 전통무용을 담당하여 가르쳤다. 11월9일에는 개천예술제 경상남도 민속예술경연대회 최우수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한량무가 1979년 5월 2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로 지정되고 예능보유자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때 본인뿐만 아니라 같이 한량무를 춘 8명의 무용가들도 모두 예능보유자로 지정되도록 노력했는데 그 출연자들은 김덕명(한량), 성계옥(승려), 정행금(각시), 정필순(마당쇠), 서정남(별감), 김연이(주모), 최금순(상좌), 김정애(장고)등이었다. 이밖에도 그에게 춤을 사사받은 제자로는 조을주, 박계현 등이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본인의 평생 목표인 양산사찰학춤만이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양산사찰학춤의 지정보류는 기쁨보다는 아쉬움만 더했다. 이어 1979년 11월 26일에는 서울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전통무용 발표회를 가졌는데 레퍼토리는 양산학춤을 비롯한 한량무, 양반춤, 타령, 굿거리, 지성승무, 나래무(살풀이), 잉어춤 등이었다. 이때에도 그의 춤을 본 김기수(국립국악원 원로사범, 보유자)는 "이것이 춤의 오리지날”이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의 활동은 무용에 대한 그의 의지와 욕망에 비례해서 점점 발표회나 전수에 열정을 쏟게 되어 1980년 5월에는 80불교 봉축제의 공연을 가졌고, 8월에는 진주에 "교방청 김덕명 전통무용 연구소”를 냈다. 또한 올바른 전통무용을 후세에 전수하고자 1981년 1월 9일 부산에도 전통무용 연구소를 내기에 이르렀다. 부산과 진주의 연구소를 오가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그해 11월 23일은 일본 제총산(帝塚山) 대학의 초청으로 우리의 전통무용을 공연하여 그곳의 유일한 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에 "한국의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김덕명!”이라는 제목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1982년 1월 10일에 발간된 계보(季報) 제총산(帝塚山) 대학에는 청초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춤이라고 특집으로 다루었고 그 학교의 교과서에까지 그의 춤에 관한 부문을 서술하고 있다고 한다. 그 후 1982년 3월부터는 부산전문대학 무용과 민속무용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렇듯 그의 무용에 대한 평가가 퍼져나가게 되자 부산지구 J.C신문은 1982년 6월 30일자에 "양반춤에 대한 소고”라는 제목으로 일면 전체를 그의 기사로 채우기에 이르렀다. 또한 그의 춤이 사찰무용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불교 관계의 제반 공연에도 참가했던 바 1982년 1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불교협회 주최 자선공연에도 참여하여 양산사찰학춤과 양반춤을 추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는 늘 학춤을 출 때면 그 스스로가 학처럼 추는 것이 아니라 춤추는 사람이 학이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1996년에도 구희서, 김옥진 조사자에 의해 ‘양산학춤’으로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하여 명칭을 변경하여 다시 제출하여 학춤이 문화체육부 관보에서 지정을 위한 예고까지 나왔으나 동래학춤과 병행해서 전승과정을 탐문 조사를 하던 중 계보에서 양산권번 고문인 영남의 한량 이주서(李周瑞, 1865~1930)가 동래학춤의 전승자로 부각되어 나타나게 되어 학춤 전승이 부산 동래와 양산으로 분류되었지만 다 같이 이주서(李周瑞, 1865~1930)로부터 전승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으로 나중에 지정 여부에 논란의 단서가 되었고, 또 다시 주위의 방해(동래 M씨가 문화재청에 찾아가 민원 제기)로 인하여 역시 철회 부결되고 말았다. 이렇게 김덕명은 문화재 지정에 있어서 두 번의 실패를 겪게 되면서 좌절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김덕명 전승춤의 전승계보 김덕명(金德明,1924~2015)은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8살(1932)에 범어사에 들어가 불가(佛歌)를 부르거나 불교(佛敎)의식무를 흉내 내었다. 김덕명이 전문적으로 전수받은 춤 계보는 4가지로 정리되며 그중 민간춤놀이는 마을전승이기에 계보로 말할 수 없다. 첫째, 사찰에서 전승하던 학춤은 고종 때부터는 이월호(李月浩, 1825년생, 당시 어산종장)―김설암(金雪岩, 1885년생)―신경수(辛景壽, 1893~1965)―양대응(梁大應, 1897~1972, 통도사 주지) 스님으로 계맥이 이어져 김덕명 씨가 보유하고 있다. 그때 양대응스님은 조부 김두식(金斗熄)과 절친한 사이로서 양산학춤, 지성승무, 바라춤의 명인이었는데, 1940년 16세에 이 춤들을 전수받았다. 또 당시 해인사에 있다가 통도사에 온 신경수스님으로부터 승무와 학춤을 전수받았다. 즉 두 분(신경수, 양대응)의 스님으로부터 사찰춤을 전수받았다. 둘째, 민간인으로부터 전수받은 재인춤은 통도사 소속의 민간인 김두식(金斗熄, 1843~1929, 김덕명 조부)이 곡수(穀數, 수사찰 재산 관리자)로 있으면서 학춤을 전수했는데 민간인 안화주(安化周, 1894~1965), 황종렬(黃鍾烈, 1897~1957)이 전수받아 다시 김덕명이 이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셋째, 기방춤으로 이주서(李周瑞, 1882년생)―고수길(高壽吉, 1888~1965, 당시 양상 권번 원장)으로 이어지는 춤맥을 전수받게 된다. 양산권번의 권번장(춤사범)인 고수길(高壽吉, 1888~1965, 동래권번에서 양산권번이적)로부터 그의 딸 고채봉(高綵峰)과 고채숙(高綵淑, 기명은 山月)과 함께 한량무, 교방양반춤, 교방타령무, 신라장검무, 교방진연무, 태극무 등을 배웠으나 사찰춤과 춤바디가 달라 애를 먹었다. 이어서 개성권번에서 양산권번으로 이적해온 김농주(金農宙, 1905~1955)와 오누이를 맺으며 기생소고무, 타령춤, 굿거리춤 등을 배웠고, 군무(群舞)로는 장원급제를 축하하기 위하여 40~50여명의 인원이 함께 추는 부마도위춤도 배웠다. 넷째, 그가 복원한 민간춤놀이들은 딱히 전승자를 밝힐 수 없는 지역민들이며 김덕명은 탈춤과 토속민요 등 향토민속적인 기예능도 뛰어나 지역민속을 발굴하는데 참여하여 발굴한 것들이다. 김덕명의 전승춤 종목과 특징 김덕명의 춤은 사찰춤과 권번춤과 민간춤으로 크게 3계통으로 대별된다. 그는 일반인으로 사찰춤을 계승한 사람이며, 남성으로서 기생들의 춤인 권번춤을 전승받았다는 점이 다른 춤꾼들과는 다른 특이점이다. 김덕명의 전승춤 27종은 크게 3계통으로 기방계(10종), 사찰계(4종), 민간계(13종)이 있다. 1. 기방계춤으로는 한량무(한량, 기생, 승려, 주모, 별감, 상좌, 사환 등), 교방타령춤, 교방양반춤(호걸양반춤), 교방진연무, 기생소고춤, 굿거리춤, 신라장검무, 태극무, 부마도위춤(군무), 장기춤. 2. 사찰계춤(재인계와 혼합)으로는 사찰학춤, 지성승무, 연등바라춤(탑돌이춤), 연등나례살풀이춤. 3. 민간계춤으로는 성주풀이춤, 쾌재나 청청춤, 각설이타령춤, 신노심불노춤, 농사요놀이춤, 장원급제놀이춤, 기우제놀이춤, 망시꼽배기놀이춤, 가락오광대놀이춤, 석전놀이춤, 망부석사록놀이춤. 회심곡춤, 떳배기춤(得排鬼춤). 김덕명의 춤사위 특징은 첫째, 특별한 형식에 매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정신 집중과 무게, 관절조절을 통해 안정적인 자세로 이루어지는 동작이라는 점이다. 단전을 이용한 깊은 호흡과 기가 조화를 이루며, 발을 디디고 누르는 굴신동작의 걸음걸이에서 관절의 유연함이 나타난다. 남성의 투박한 멋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춤사위는 사찰춤과 권번춤에 두루 정통하여 지극히 예술적으로 승화된 춤이다. 쌍벽을 이루는 동래학춤은 이주서로부터 김귀조, 김문수, 김필상, 최순백, 김태현, 유봉오가 학춤을 사사 받았고 김귀조는 아들인 김희영에게, 김문수는 아들인 김동원에게 각각 전수하였으며 작고 이전에 김희영이 외조카 이현경에게 전수하였으나 중단되었고 김동원이 유일한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9년 현재 구음보유자로 유금선이 지정되었으며 김태형, 이성훈이 기능보유자 후보로, 김정양 이광호가 전수조교로 꾸준히 전승하고 있다. 이에 비해 양산사찰학춤은 1976년 당시 무형문화재보고서 조사자 서국영의 기록에 의하면 김말복이 증언하기를 1880년대 이후 이월호(1852~?), 1983년대부터는 김설암(1885~1970), 1920년 이후에는 신경수(1893~1965)와 양대응(1897~1972)스님의 학춤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하며, 신경수는 사하부락인 신평리에 나와서 남소석(1904~1960)의 꽹쇠 장단에 맞추어 학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양산사찰학춤」이 통도사에서 전승되었음은 민간인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윤장우씨는 1938년부터 통도사 광원에 있으면서, 1945년까지 절에 있었는데 스님들 중에서 끼가 있는 스님들이 사하부락인 평산리 주막에서 춤과 소리를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사하부락인 신평리에서 태어나 하북면의 면장이 된 지명구씨는 어릴 적 사하부락인 신평리에서 양대응(1897~1972)스님이 장구장단에 맞추어서 학춤을 추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통도사에 있었던 신경수(1893~1965) 스님은 당시 명무 승려로서 학춤을 잘 추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사찰에서는 대제(영산재 등)를 지낸 후 신도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사찰경내 마당에서 사찰의식 외에 여흥을 펼치는 사례가 많았다. 이때 외부에서 놀이꾼을 초빙하기도 하고 또는 장기가 있는 승려가 직접 춤을 추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김덕명(1924~2015)은 통도사에서 신경수, 양대응 스님에게 「양산사찰학춤」을 배웠다. 남사당의 북소리에 이끌려 동네잔치에서 춤을 추는 김덕명을 부모는 아들이 혹여 광대라도 될까 통도사로 보냈으나 오히려 통도사에서 「바라춤」, 「지성승무」, 「장검무」, 「학춤」 등을 배웠다. ‘학산’ 이라는 호는 절에서 나올 때 통도사 보화스님이 지어 주었다고 한다. 학춤공부를 많이 한 덕명이 나무 위에서 학이 날듯, 학춤을 잘 춘다는 뜻이었다. 위의 계보 외에 「양산사찰학춤」을 추었던 스님들은 더 많았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기록을 찾아 볼 수 없고 점차 사찰계에서 학춤의 자취가 사라지고 현재는 추어지지 않고 있다. 둘째, 민간(재인)춤의 형성 배경을 보면 다음과 같다. 무형문화재 보고서 제 122호에 따르면, 처음 민간으로 전승되어진 과정은 김두식(金斗熄1843-1930)에 의해서였다. 김두식은 당시 곡수운반 관계로 약 40세에 통도사를 출입했으며, 사찰에서 학춤을 전수받아 추었다. 이 춤을 다시 동부락 거주 황종렬(黃鐘烈,1897-1957)이 전수받았고 이어 김덕명(金德明)에게 전해졌다. 동면의 황종렬은 춤에 대한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동면 내송리 마을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도적으로 춤을 통해 흥을 도왔다고 하며 양산 출입도 매우 빈번했다. 특히 내송리에 있는 주점에 자주 출입하면서 가무를 즐겼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의 전승계보 외에 양산에는 학춤을 즐겨 추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양산에서 명무수로 이름난 이주서(1869-1944)란 사람이 학춤을 잘 추었으며 당시 이 춤이 서상건(1982-1967)에게 전승되었다며 1976년 당시 조사자인 서국영에게 증언하였다. 서상건씨는 양산에서 가장 큰 포목점(일신상회)을 경영하면서 매우 부유하게 생활하였고, 풍류를 즐겼던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춤을 즐겨 추었다. 그래서 양산에서는 그의 별호가 "춤 잘 추는 서상건”이란 소문이 생겨났고 주로 동래온천장에 출입하면서 가무를 즐겼다고 우성렬(1930- :서상건의 먼 친척)씨가 증언하였다. 이렇듯 양산에는 여유로운 풍류객들이 많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김두식, 황종렬에 이어 김덕명은 통도사에서 학춤을 배웠으며 민간에서 또한 전수받아 꾸준한 활동과 「양산사찰학춤」의 보존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감덕명이 증언(2015. 5.16, 김덕명자택에서)한 지성승무에 대한 배경설화는 다음과 같았다. 지성승무는 두 가지가 있는데 군무와 독무로 춘다. 김덕명 선생님이 중언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어느 사찰의 스님이 불도를 닦다가 탁발하려 동네에 내려갔는데, 동네 어구의 밭두렁에서 어린아이가 풀을 뜯어먹고 있어 의아하게 생각하여 아이를 업고 동네를 들어가니 마을사람들이 돌림병으로 모두 죽고 아이만 살아서 먹을 것이 없어 밭두렁에서 풀을 뜯어먹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이 아이를 데리고 사찰로 돌아와 상좌승으로 키우게 되었다. 그 후 상좌가 두 명(악기다루는 어산상좌, 수발과 교육하는 상좌)이 있었다. 그 후 노승은 불법해탈을 위해 토굴에서 여러 해를 불법을 깨닫기 위해 참선을 하며 불공을 드리고 마치고 돌아서 나오던 중 연유도 없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뒤에서 함께 불공을 드리던 상좌가 심히 놀라 동분서주하며 온갖 정성을 다해 간호를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하고 상좌의 보살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승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노승의 시신을 끌어 앉고 통곡을 하던 상좌도 너무 슬픈 나머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어려서 데려다 키운 상좌는 부모님이나 다름없는 노승이 쓰러지니까 슬픔이 깊어 기절해 같이 쓰러진 것이다. 상좌가 기절하여 비몽사몽간에 백발도승이 검은 지팡이를 짚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쿵쿵 두드리며 "네 이놈 상좌야! 노스님은 너의 불거지운명(不居之運命)로 너의 살기(殺氣)에 스님이 죽어가고 있는데 너마저 누워 있으니 한심하구나! 빨리 일어나 스님을 구해라!” 하고 도승이 지팽이로 "꽝!”하고 땅을 치는 호통소리에 놀라 상좌가 벌떡 일어나 "소승의 스님을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을 하며 세세사정을 말하니 "허허, 너의 갸륵한 마음이 기특하니 노스님을 살리는 비법과 방도를 가르쳐 줄 테니 그대로 이행하거라” 그러자 순간 몇 명의 악단이 좌우로 둘러앉아 장단이 울려 퍼지고 도승은 가락에 맞춰 춤을 추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추는 춤을 잘 보아라. 이 춤을 너의 노스님 앞에서 정성껏 추게 되면 분명코 살아날 것이다.” 이어 말하기를 "그러나 너는 나와 몇 가지 약조를 꼭 지켜야 한다. 노스님이 살아나시거든 내가 전해준 그 승복을 벗어 북에 걸어 두고 소생하신 노스님을 부축도, 말도 하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곳에 잠시도 지체 말고 노스님과 바로 하직하고 남으로 계속 내려가면 깊은 산골짜기에 암자가 있을 것이니, 그 암자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필경 성불할 것이다.”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있는 상좌에게 도승은 다시 "노스님과 너는 숙명적으로 액과 악이 맺혀 영원히 동거생활이 불가능하리라. 만약 나의 명(命)을 어기면 너와 노스님은 변을 당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놀라 깨어난 상좌는 선몽이 분명하며 옆에 도승이 준 승복과 염주가 있어 착용하고 노스님을 살려야한다는 일념으로 어려워 잘 생각나지 않는 춤이지만 정성껏 춤을 이어 추었다. 그러자 노스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을 돌리며 긴 숨을 내어 쉬며 깨어났다. 환희에 차 기쁨의 춤을 추며 노스님을 부축해 일으키고 싶었지만 도승의 명을 염두에 두니 앞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노스님을 홀로 두고 떠나야 하는 상좌의 마음은 오죽했겠지만 등지고 떠나 일러준 남으로 가서 암자에서 노스승을 살린 고귀한 이 춤의 연유를 고이 간직하여 후세에 물려주며 이르기를 "이 춤을 지성껏 전수시켜 만대에 전하라” 이르렀고, 이름 하여 '지성승무'라고 전했다.” "나(김덕명)는 춤이라면 좋아서 승무든 학춤이든 열심히 배웠다. 하루는 내가 잘 아는 통도사 스님(당시 대처승, 단청제작)이 내려와 보시고 승무 내용이나 아나? 하시면서 한 시간에 걸쳐 승무설화를 이야기를 해주셨고, 스님 급수에 따른 가사장삼에 대한 복색이야기도 해주셨다. 당시 금강암(지금은 비구니들이 기거하는 암자)이라는 암자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부인이 기거하였다. 그때 이동안(수원화성재인청 소속, 발탈보유자)이 부산에 내려와 활동할 때인데 내 스승이라 하면서 암자 작은방을 소개하여 공짜로 기거할 수 있게 해주고 살림과 음식장만을 내가 다해주었다. 광대줄타기를 했는데 기능이 약해 그 후 다시 서울로 갔다.”한편 향토민속예술의 발굴활동에서도 커다란 역할을 하여 ‘진주의 한량무’, ‘김해의 석전놀이’, ‘가락오광대’, ‘양산의 웅상망시곱배기놀이’등이 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김덕명이 결코 춤을 떠날 수 없었던 춤 인생은 세속적인 고초를 겪으면서도 단념하지 않은 운명이었다. 그렇게 걸어온 그는 남성의 멋을 잃지 않았고, 굵은 선과 힘, 부드러움이 조화된 그만의 특출한 춤사위를 지켜왔다. 오늘날 남성춤이 중성화 또는 여성의 모습이 강하게 묻어나온다면 그의 한량무와 학춤은 남성의 장점을 표출시킨 것으로 남성춤의 지존을 지킨 마지막 사찰춤과 영남춤꾼이었다. 김덕명 춤사위 성향과 특징 김덕명의 춤은 크게 두 가지 계통을 잇고 있다. 우선 사찰계통춤의 춤이며, 다음은 기방계춤이다. 그렇다면 그이 춤은 어떤 계통의 성향일까? 전수내용적으로는 사찰계와 기방계의 혼합성향이지만 그의 인생 후반에 나타난 춤 성향은 기방계통보다는 사찰계(재인계)적 성향이 월등이 높게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에 김농주로부터 엄격한 기방춤 기법을 몸에 익혔지만 성장하면서 기방춤의 교태미는 사리지고 남성성향이 큰 재인계적 성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게다가 거구의 체격에다 탈춤에서 나타난 영남춤의 덧배기춤적 특성을 강렬하게 품고 있어 국내 전통무용가 중에서 가장 영남성향과 재인성향을 간직한 춤꾼이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기방계적 섬세함이 덧씌워져 있어 거친 남성성만 가진 것이 아니라 올곧은 전통춤 즉 기방춤의 섬세한 기법이 몸에 배어나 춤집이 크고 활기가 넘쳐도 투박한 마당춤이 따를 수 없는 표현력을 지녔다. 비교의 예를 들자면 동시대 같은 남성무용가라도 이매방은 어린 시절 처음 입문한 춤이 기방춤(권번 함국향의 첫 가르침)으로 형성된 춤바탕이었다. 그 후 재인춤인 이대조, 박용구의 춤들을 익혔지만 이미 몸과 마음의 성향이 기방계로 고착된 춤성향이 평생춤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래서 이매방춤은 기방계통성을 지켜온 ‘춤속’과 ‘춤바디’를 평생 지켜 전승한 것이다. 반대로 김덕명은 맨 먼저 체득한 춤이 사찰계춤이다. 사찰계의 특성은 재인계적 성향과 불교의례적 성향이 혼합된 것이지만 김덕명은 범패작법을 주로 행하는 어산승(魚山僧)이 아닌 민간인이었기에 춤성향에서 불교의례적인 성향은 약화되고 재인계적 성향만이 남게 된 춤성향이 형성된 것이다. 게다가 김농주라는 개성권번에서 활동한 명기의 가르침도 어린 시절에는 기초로서 가능했지만 성인이 되면서는 춤의 본성이 나타난 것이다. 마치 궁중의 무동들처럼 어린 시절에는 중성적인 성향으로 여성적인 고운 춤을 익혔어도 사춘기를 넘어서면 남성성향이 나타나 악사로 전향하거나 퇴출한 것과 같은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하나 그간 문제가 되었던 동래학춤과 양산사찰학춤의 전승계보에서 윗대에 같은 양산권번 고문인 영남의 한량 이주서(李周瑞, 1865~1930)가 동래학춤의 전승자라는 점으로 양쪽 학춤의 실존성은 함께 증명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전승과정에서 성향이 아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즉 현전하는 동래학춤과 양산학춤을 비교해볼 때 동래학춤은 동래권번을 중심으로 전승되다보니 기방계적 성향이 강해졌고, 동래는 부산이라 춤추는 인적자원이 풍부해 군무형태로 전승되었다. 이에 비해 양산은 시골이라 춤추는 인적 자원도 부족하고 통도사를 중심으로 전승한 사찰춤으로 재인계적 성향이 강화된 춤이다. 따라서 두 지역 학춤을 보면 동래학춤은 기방계적 성향에다 동래기생 유금선(1931~2014)보유자의 구음소리가 흥을 돋우어 곱고 부드러운 날개춤사위로 여러 마리 학이 어우러지는 ‘기방계적 군무학춤’으로 발전하였고, 양산학춤은 사찰중심으로 춤집도 크고 활기 넘치는 춤사위로 전승한 ‘사찰(재인)계적 독무 또는 쌍무 학춤’으로 차이가 있다. 학춤사위의 구체적인 표현에서도 동래학춤은 학의 형상을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데 비해 양산학춤은 학의 생태성과 겉모습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춤사위가 많다는 점이다. 즉 동래학춤은 동래야류의 양반춤사위 중에 학춤과 유사한 배김사위, 옆걸음사위, 활갯짓 뜀사위 등과 모이 줍는 사위, 외발사위 정도이고 양팔을 어깨 위로 들고 추는 날개사위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발사위도 한쪽다리를 구부려들고 다른 쪽 다리는 길게 뻗어 학의 긴 자태를 나타내는 발사위 특징을 보이며 주무수와 조무수가 윤무형태의 군무로 대형변화가 많은 점이 특징이다. 이에 비해 양산학춤의 팔사위는 학날개, 학머리로도 표현하고 땅에 내려앉는 사위, 위엄을 보이는 사위, 좋아서 으쓱이는 사위, 먹이 쪼는 사위, 놀라 펄쩍뛰는 사위, 짝을 어르는 사위, 동사위, 비상하는 사위 등 24가지 학의 습성을 나타내는 학춤사위가 다양하며 발사위는 양다리를 균등하게 구부리며, 독무나 군무로 출 때도 앞으로만 진행하거나 시계반대방향으로만 진행하는 등 대형보다는 학춤사위에 치중하여 동래학춤과는 사뭇 다르고 다양하며 예술성이 높고 활기가 넘친다. 또한 양산권번 고문인 한량 이주서(李周瑞, 1865~1930)가 동래권번으로 가서 학춤을 전승시켰다고 하는 것은 학춤의 본류가 양산(통도사)이고 지류가 동래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며, 양산과 동래의 춤전승 환경이 달라 서로 달라진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지역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동래는 이주서의 학춤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단일적 계보(이주서>김귀조, 김문수>김희영, 김동원>유금선, 김태형, 이성훈)였다면, 양산은 이주서 외에도 동시대 전승자(김설암, 김두식, 고수길)도 많았고, 계통 계보도 사찰계(김설암>신경수>양대수>김덕명), 재인계(이월호>김두식>안화주>황종열>김덕명), 기방계(이주서>고수길>김농주>김덕명) 등 다양하였기에 학춤의 풍부한 내용과 전승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동래학춤과 양산학춤은 같은 영남지역춤이라 할지라도 춤성향과 춤사위 특징이 많이 달라 무형문화재로 양산학춤을 지정하는데 동래학춤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산사찰학춤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보까지 올랐으나 동래측의 반발로 무산된 것은 한국전통춤 중에서 가장 남성다운 학춤(한량무 계열)이 지정되지 못하게 되어 여성성이 강한 살풀이춤, 태평무, 승무 등만이 편중되는 역사적 오류를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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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굿(GOOD)보러가자 안동공연 개최무형유산의 대중화와 전승 활성화를 위해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이 지원하는 2020년「굿GOOD보러가자」공연이 오는 7월 31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의 진행으로 열린다.2004년 첫선을 보인 후 올해로 17년째를 맞이하는「굿GOOD보러가자」는 우리 전통 소리와 춤, 기예가 어우러진 명품 전통공연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전통의 향연을 선보여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7월 25일 남원 공연으로 첫발을 뗀 2020년「굿GOOD보러가자」는 이번에는 전통문화의 도시 안동에서 전통이라는 정체성으로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전통예술 공연을 펼친다. 특히, 올해 「굿GOOD보러가자」주제는 코로나19로 인해 국민의 시름과 근심이 깊은 상황에서 잠시나마 이를 위로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의 복귀를 기원하고자 하는 뜻으로 ‘무사무려’(無思無慮)로 정하였다. 걱정도, 근심도 없는 상태를 뜻하는 무사무려(無思無慮)는 많은 사람이 새해를 기다리며 떠올리는 대표적인 사자성어로 지치고 힘든 국민이 전통공연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영화배우이자 국악인 오정해와 봉산탈춤 연희단 ‘샘도내기’의 윤원중·신선일의 공동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김무길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산조 전수교육조교)의 거문고 산조와 김선옥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제11-1호 진주삼천포농악 보유자)의 부포놀이, 권원태 예인(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의 줄타기 공연이 마련되어 있다. * 부포놀이: 상쇠가 부포(백로나 오리 털로 만들어 벙거지 꼭대기에 단 장식)를 흔들거나 돌리는 놀이 또한, 박경랑 예인(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교방굿거리춤 이수자)의 교방춤과 박월산 명인(경남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보유자 후보)의 양산사찰학춤을 선보이는 한편, 한국의집 예술단의 오고무도 관람객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전통을 바탕으로 한 흥겨운 현대국악도 함께 한다. 국악단 뮤르는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보사노바, 재즈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공연을 준비했고, 탄츠이디엠은 민요 ‘옹헤야’를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Electronic Dance Music)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교방춤은 고려와 조선 시대 교방에 소속된 기녀가 추던 춤이고, 양산사찰학춤: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내려오던 학춤이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정부혁신의 하나로 국민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행사를 누구나 누릴 수 있도록 이번 공연에 사회적 배려계층을 일부 초청하고 교통편도 제공할 계획이다. 2020년「굿GOOD보러가자」안동공연은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마스크 착용, 발열 확인, 안전거리 유지 등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여야만 참여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국립무형유산원 누리집(www.nihc.go.kr), 한국문화재재단 누리집(www.chf.or.kr), 안동시청 누리집(www.andong.go.kr)을 방문하거나, 전화(한국문화재재단, ☎02-3011-1707)로 문의하면 일정, 장소 등을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굿GOOD보러가자」공연은 앞으로 경주시, 강진군, 철원군, 진주시에서도 이어질 계획이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오랜 시간 무형의 가치를 이어온 예술정신이 깃든 「굿GOOD보러가자」공연에 오는 관람객들이 우리의 전통을 단순히 ‘옛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뻗어 나가는 ‘우리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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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 굿GOOD보러가자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이 주관하는 2019년「굿GOOD보러가자」공연이 오는 24일 전라남도 담양군(군수 최형식)을 시작으로 총 6회 개최된다. 2004년 첫 선을 보인 「굿GOOD보러가자」는 우리 전통 소리와 춤, 기예가 어우러진 명품 전통공연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전통의 향연을 선보여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올해에는 ‘세대를 넘어’라는 주제로 전라남도 담양군(5.24.), 충청북도 단양군(6.26.), 강원도 정선군(7.18.), 경기도 오산시(9.6.), 경상남도 의령군(10.24.), 전라북도 김제시(11.21.)에서 열릴 예정으로, 여러 세대를 지났지만, 세월에 닳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정체성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알아가는 뜻깊은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2019년 「굿GOOD보러가자」의 서막을 알리는 담양 공연은 남도에서 나고 자라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남도의 명인들을 조명해본다. 먼저, 남도 소리의 깊이를 품고 있는 이영애 명인(광주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보유자)과 제자들이 가야금 병창을 선보인다. 이어 담양의 소리를 담아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일구어낸 원장현 예인의 연주를 김청만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의 장단과 함께 들어볼 수 있다. 또한, 담양의 우도농악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동언 명인(전남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 설장구 보유자)이 우도농악의 꽃이라 불리는 설장구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선이 굵고 맑은 남도소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신영희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과 선비의 춤인 학춤에 여성적인 선과 힘을 덧대어 주목받고 있는 사찰학춤의 박월산 명인, 소고춤을 기예에서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은 채상소고춤의 김운태 명인 등 내로라하는 가·무·악 명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한국문화재재단(☎02-3011-1707) 조선의 음악가 난계박연 국악 콘텐츠로 거듭나다 충북 영동 국악문화도시로의 대외적 위상 강화 충청북도, 영동군, 충청북도 지식산업진흥원은 조선의 음악가 난계박연의 서른아홉개의 상서를 소재로 ‘Thirty-nine Musical’공연 콘텐츠를 개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시행한 ‘2019 지역전략산업 연계과제 지원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지역전략산업 연계과제 지원 사업은 지역콘텐츠산업의 장기적 육성과 발전 및 전략산업과 시너지를 창출하고자 콘텐츠의 제작과 활용을 지원한다. 이번에 선정된 Thirty-nine Musical 공연은 국비 1억9000만원을 지원받아 뮤지컬로 제작되어, 총 8회에 걸쳐 올 9월에서 10월 중 토요일 영동군 일원에서 개최된다. 우리나라 3대 악성인 조선의 음악가 난계 박연을 소재로 박연의 음악적 업적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서양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국악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국립국악원 영동유치 역량강화를 위해 기획됐다. 조선왕조실록과 난계유고에서 발췌한 박연이 세종대왕에게 올린 39개의 상서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하여 조선의 음악을 정리하는 과정을 연극, 음악(악기, 노래), 춤, 영상으로 전달한다. 상서는 제례의식, 복식, 악기, 진설(제사음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번에 개발된 스토리는 관광마케팅과 교육적 활용 등 사업 확장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충북 영동군은 3대 악성 난계 박연이 태어나서 활동하고 생을 마감한 곳으로서 난계사, 생가, 난계묘소가 잘 보존.관리되고 있는 차별화된 우수 콘텐츠를 간직한 곳이다. 또 현악기, 타악기 등 다양한 국악기 체험, 국악 공연, 숙박, 식사가 가능한 국악체험촌 (75,956㎡)과 국악박물관, 국악기 제작촌, 세계 최대북 천고 등 국악과 관련된 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명실상부한 국악의 고장이다. 이번 국악 콘텐츠개발을 계기로 충북 영동은 독일의 뮤직메세(음악사업 전시회, 악기비즈니스)와 같이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등 세계적 국악문화도시로 재탄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연준 충청북도 문화예술산업과장은 "충청북도의 지역특화콘텐츠를 적극 개발하고 육성해 지역 콘텐츠 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2차적 콘텐츠 확산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활성화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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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굿GOOD보러가자」세대를 넘어 전승되는 우리 무형유산- 전라남도 담양을 시작으로 2019년「굿GOOD보러가자」개최(연 6회) -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이 주관하는 2019년「굿GOOD보러가자」공연이 오는 24일 전라남도 담양군(군수 최형식)을 시작으로 총 6회 개최된다. 2004년 첫 선을 보인 「굿GOOD보러가자」는 우리 전통 소리와 춤, 기예가 어우러진 명품 전통공연으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전통의 향연을 선보여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올해에는 ‘세대를 넘어’라는 주제로 전라남도 담양군(5.24.), 충청북도 단양군(6.26.), 강원도 정선군(7.18.), 경기도 오산시(9.6.), 경상남도 의령군(10.24.), 전라북도 김제시(11.21.)에서 열릴 예정으로, 여러 세대를 지났지만, 세월에 닳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정체성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알아가는 뜻깊은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2019년 「굿GOOD보러가자」의 서막을 알리는 담양 공연은 남도에서 나고 자라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남도의 명인들을 조명해본다. 먼저, 남도 소리의 깊이를 품고 있는 이영애 명인(광주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보유자)과 제자들이 가야금 병창을 선보인다. 이어 담양의 소리를 담아 ‘원장현류 대금산조’를 일구어낸 원장현 예인의 연주를 김청만 명인(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보유자)의 장단과 함께 들어볼 수 있다. 또한, 담양의 우도농악을 이끌어가고 있는 김동언 명인(전남무형문화재 제17호 우도농악 설장구 보유자)이 우도농악의 꽃이라 불리는 설장구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선이 굵고 맑은 남도소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신영희 명창(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과 선비의 춤인 학춤에 여성적인 선과 힘을 덧대어 주목받고 있는 사찰학춤의 박월산 명인, 소고춤을 기예에서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은 채상소고춤의 김운태 명인 등 내로라하는 가·무·악 명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2019년「굿GOOD보러가자」공연과 자세한 문의는 국립무형유산원(http://www.nihc.go.kr), 한국문화재재단(http://www.chf.or.kr) 누리집을 방문하거나, 한국문화재재단(☎02-3011-1707)으로 문의하면 일정, 장소 등을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오랜 시간 무형의 가치를 이어온 예술정신이 깃든 「굿GOOD보러가자」공연은 우리의 전통이 단순히 ‘옛날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뻗어 나가는 ‘우리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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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창극발전소의 <창극"장끼전"> 7.19무제 문서 p { } body { font-weight: normal; } 창극 ‘장끼전’ 토요상설 전주풍류 공연 7.19(토) 오후 4시 한벽극장 제이유(JU)창극발전소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기반으로 우리의 멋과 얼, 신명의 소리를 이어가는 창극 전문단체이다. 한국 고유의 장르인 전통창극을 현시대의 대중과 호흡할 수 있도록 연희양식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물론 판소리12바탕의 창극본을 복원하여 창극화하고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또 하나의 새로운 창착 창극을 제작하여 문화예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어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크게 여는 마당, 본 마당, 푸는 마당의 3장구조로 주인공 장끼와 까투리가 무대를 주도해 나가며 작창된 판소리 이외에 남도민요, 잡가, 육자배기등 다양한 소리들과 택견, 학춤등 활달한 몸짓들이 극의 중간 중간 섞여 관객으로 하여금 줄거리 자체의 이해와 신명을 돋우어 준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장끼, 현실의 능동적 주체로써 여성성을 상징하는 까투리, 남존여비 사상을 타파하고자 하는 주제로 종래의 장끼전이 재해석되어 있다. 도입부 장끼와 까투리의 수난을 통해 인간의 환경파괴, 자연 훼손에 대한 풍자와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공연내용 중... 장끼와 까투리는 한겨울 보름을 굶고 배가고파 먹이를 찾아 헤맨다. 까투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콩을 주어먹으려다 사람이 놓은 그물에 걸린다. 까투리는 장끼가 비명횡사를 당한 줄 알고 슬피 통곡하는데 산 속의 여러 새들이 까투리를 차지하려고 개인의 노래자랑을 하며 청혼을 구하지만 까투리는 거절한다. 이때 죽은 줄 알았던 장끼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남존여비의 잘못을 뉘우치고 까투리와 행복하게 살아간다. ○ 출연자 명단 배우 - 장끼:오민혁, 까투리:진은영, 공작:송봉금, 앵무새:박성희, 까마귀:송은주, 부엉이:강민아, 물오리:남지원, 제비:조연수, 까치:강푸름 악사 - 가야금:김은진, 아쟁:이예슬, 대금:황보석, 피리:이환주, 해금:김신희, 장단:김지훈 입장료는 1,000원 이상 기부금 형태로 진행되며 문의전화 280-7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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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흥과 신명" 06월 08일1. 일시 : 2011년 06월 08일(수) 19:30 2. 장소 :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 3. 주최 : 국립민속국악원, 국립부산국악원 4. 문의 :(063) 620-2328 영남의 흥과 신명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국립부산국악원과의 교류공연을 개최하여 레퍼토리 교류 및 지역간 문화교류에도 이바지함과 상호 발전 및 도약을 통해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하고자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에서 공연을 개최합니다. □ 공연내용 1. 승전무 中 북춤, 칼춤 ‘승전무’는 경남 통영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로 북춤과 칼춤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북춤은 원무를 중심으로 12인의 협무는 창을 하며, “지화자”라는 후렴과 창은 병사의 사기를 북돋우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칼춤은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기녀들이 장졸들의 심정을 굳건한 전투력으로 무장시킨 춤이다. 2. 강태홍류 산조병주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를 가야금과 해금의 이중주로 새롭게 구성한 곡이다. 강태홍(姜太弘, 1893~1957)은 명창 강용안(姜龍安)의 아들로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에게 가야금을 배웠고 협률사(協律社), 조선성악연구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며, 중년 이후 부산에서 활동하며 제자를 양성하였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 ‘강태홍류 가야금산조’는 우조와 강산제ㆍ경조가 많이 구성되어 있어 여타의 가야금산조에 비해 남성적이고 꿋꿋한 기상과 맑은 느낌이 주조를 이룬다. 특히 강태홍 본인이 장단에 뛰어난 감각을 지녔기 때문에 불규칙한 장단과 복잡한 가락이 많이 출현한다. 3. 동래학춤 동래지역에서 전승되어온 학춤으로 현재는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있다.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추는 춤으로 영남지역의 역동미와 학의 우아한 자태를 표현한 예술적 우아미가 조화롭게 표현된 격조있는 춤이다. 동래학춤은 틀에 짜여진 정형미보다 즉흥미와 개인의 예술성이 발현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춤사위를 추구한다. 4. 영남들노래모음곡 들노래는 논이나 밭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뜻하는 말로, 노동의 피로를 덜고 능률을 높이는 노동요이다. 영남지역의 예천통명·고성농요 이외에 경북예천의 아부레이수나, 상주·구미의 모심는소리, 예천의 돔소소리, 경남 진주의 망깨소리, 부산의 풀노래, 통영의 나무꾼둥기소리, 산청의 보리타작소리와 고성의 캥마쿵쿵노세를 작품화 하였다. 5. 수영어방놀이 현종 11년에 성(城)이 완성되어 성의 전초기지인 포이진에 어방을 두고 그 어방에 어민들을 집결하여 어업에 집단적인 권장과 진흥을 위하여 어업기술을 지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좌수영어방이다. 현재의 좌수영어방놀이는 어방의 어로작업 중 수영만 해안에서 행하던 멸치잡이 후리질 어로에서 연유한 것인데, 1978년도에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전승되고 있다. 오늘 작품은 전통에 기반을 두고 무대화한 것으로 놀이형태에서 무용의 형태로 재구성 되어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선의 동작과 놀이의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다. 6. 한반도아리랑순회 ‘한반도 아리랑 순회’는 각 지역의 여러 아리랑 중에서 구술과 암기에 의해 전승되거나 자연적으로 터득되었던 아리랑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곡이다. 많이 알려지고 불리어지는 아리랑 보다, 지역 어르신들의 말씨와 삶이 고스란히 녹아든 노랫말과 선율을 통해 아리랑의 진 풍미를 맛볼 수 있다. 7. 풍장놀이 풍장놀이는 백성들의 희ㆍ노ㆍ애ㆍ락을 경쾌한 타악기 선율위에 여러 명의 무용수들과 연희자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장구춤, 북춤, 소고춤과 자반뒤집기, 상모놀이 등 다양한 기예를 선보이며, 음악과 춤이 한바탕 대동하는 무대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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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소리 우리춤′ 1월 16일● 일 시 : 2010년 1월 16일(토) 오후 3시 ● 장 소 :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연악당) ● 주 최 : 국립부산국악원 [ 공연내용 ] ▶ 가인전목단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은 ‘아름다운 사람이 모란꽃을 꺾는다’라는 뜻을 가진 궁중무용이다. 꽃 중의 왕이라고 하는 모란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1828년 효명세자(1809~1830)가 만들었다. 무대 중앙에 놓인 모란꽃병을 중심으로 무용수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다양한 대형을 만들어 가며 꽃을 들고 화려하게 춤춘다. ▶ 가야금 병창 ‘고고천변’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바다 속에 서 살던 자라가 병든 용왕의 약을 구하기 위해 육지로 처음 나와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산천 경치를 묘사하는 소리대목을 가야금 반주에 얹어 부르는 것이다. 중중모리의 활달한 장단에 맞춰 넓은 음역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선율에 멋스러운 사설이 잘 어울려 가야금병창의 명곡으로 꼽힌다. 이 노래는 20C 초반 오태석이 처음 가야금병창으로 불러 인기곡이 되었는데, 이후 박귀희가 노래 중간에 가야금 간주 부분을 더 짜 넣고 선율 단락이 끝날 때마다 가야금의 연튕김 주법을 구사하는 등 음악요소를 첨가하여 보다 예술성 높은 병창곡으로 다듬었다. ▶ 진주교방굿거리춤 교방이란 기녀들의 가·무·악을 가르치던 기관을 가리키며, 무속금지령으로 무당이 교방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 춤이기에 교방굿거리 춤이라 일컫게 되었다. 이 춤의 보유자인 故춘당 김수악이 굿거리춤에 소고춤을 접합시켜 춤을 추어 오다가 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에서 선을 보인 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춤은 동작이 복잡하고 즉흥적이며, 한국 춤의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 입체창 ‘사랑가’ 판소리는 노래로 된 서사적이고 웅장한 음악 일인극으로서, 창자 한 명이 여러 극중 인물의 역할을 맡고, 고수 한 명이 긴장감과 장단의 변화, 그리고 여러 다른 표현들을 위해 반주한다. 창극은 한 사람이 부르던 판소리를 소리, 즉흥적인 반주를 의미하는 수성가락반주, 가창자의 연기, 춤 등 다양한 요소를 덧붙여 만든 악·가·무 종합형태의 예술장르이다. 창극은 판소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배역에 따라 나누어 부르고, 북 반주를 여러 악기의 즉흥적인 반주로 변화시키며, 극적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이 가미되었다. 오늘 연주는 창극이전에 선보이던 형태인 2인 입체창으로 감상한다. ▶ 산조병주 일반적으로 ‘산조병주’란 두 가지의 국악기가 어우러져 비슷한 가락의 산조를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악기편성과 산조 가락의 흐름에 따라 느낌과 기교가 다르다. 산조 독주와는 대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점들이 많고 오늘날 병주의 연주 기법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 오늘 공연에서는 가야금·거문고·해금이 함께 연주한다. 각 악기가 가지는 매력으로 서로의 음악적 클라이맥스를 표현한다. ▶ 동래학춤 한국의 `조류의 춤`으로서는 학춤이 유일한데, 여기에는 동래학춤 이외에 궁중학무와 한성준(韓成俊 : 1874~1941)류 학춤이 있다. 그러나 동래학춤은 궁중학무나 한성준류 학춤과는 계통을 달리한다. 경상남도 일원의 덧배기춤 가락을 바탕으로 청초하고 우아한 학의 모습을 빗대어 고고한 선비의 기품과 출렁이는 신명을 담아내는 한량들의 장기춤의 하나이다. 오늘 작품은 동래학춤에 바탕을 두어 국립부산국악원 엄옥자 예술감독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 남도민요 전라도를 비롯해 충청남도와 경상도 남부 일부를 포함한 지역의 노래를 남도민요라 한다. 느리고 구슬픈 노래로써 목을 떨어주고 꺽어내는 계면조를 주로 사용하여 비장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종류를 보면 새타령ㆍ육자배기ㆍ자진육자배기ㆍ긴 농부가ㆍ자진 농부가ㆍ둥가타령ㆍ물레타령ㆍ흥타령ㆍ진도아리랑ㆍ까투리타령ㆍ강강술래ㆍ화초사거리ㆍ보렴 등이 있다. ▶ 사물놀이 사물놀이는 북·장구·꽹과리·징 등 네 가지 악기로 느리고 빠른 장단과 다양한 리듬을 즉흥적으로 구사하면서 맺고 푸는 역동성을 표출해내는 타악 합주이다. 사물놀이의 모체(母體)인 풍물가락의 근원지에 따라 웃다리·좌도·우도·영남풍물 등으로 구분되며, 공연형태는 잽이들이 앉아 연주하는 앉은반 외에 서서 춤과 놀이 동작을 곁들여 풍물을 치는 선반(판굿)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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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원 변호사가 들려주는 전통무용 이야기1 - 한성준 9. 202009 국립국악원 해설공연시리즈 ● 일 시 : 2009. 9. 20(일) 오후 3시 ● 장 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대극장) ● 관람료 : A석 20,000원 / B석 10,000원(취학아동 이상부터 입장가능) ● 문 의 : 국립국악원 (02)580-3300 ► 프로그램 - 출 연 :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단, 무용단 - 초청명사 : 강지원(변호사) - 해 설: 최해리(한국춤문화자료원 운영위원) 1.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승무 –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는 사찰 승려의 춤을 전문 춤꾼들이 예술적 형식을 갖춘 독무로 발전시킨 민속무용이다.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춤으로 한성준이 무대 공연작품으로 완성하였다. 2. 자연미와 예술미의 조화 - 학춤 – 수명장수의 상징으로 알려진 학 모양의 탈을 전신에 쓰고 추는 학춤은 고려(918∼1392) 때부터 궁중 의례에서 공연되었다. 2명의 무원들이 추게 되는데, 학이 몸을 흔들고 부리로 땅을 쪼는 시늉 등의 동작을 춤사위로 아름답게 표현해낸다. 3.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춤 - 태평무 – 태평무는 ‘왕실의 번영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하여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을 담은 창작 무용이다. 궁중 왕비의 모습에서 유래한 춤이기는 하지만 궁중 정재가 아닌 민속무용으로, 경기무악의 토속적인 가락과 10박의 징 장단에 맞추어 경쾌하게 춤을 춘다. 2009년 가을, 국립국악원의 새로운 해설공연시리즈 명사, 명인을 만나다 강지원 변호사가 들려주는 전통무용의 당대 명인 한성준 - 전통무용, 민속음악, 정가를 빛낸 3명의 명인! 국악계의 전설이 돌아온다. - 오는 9월 20일 무왕(舞王)한성준 공연을 시작으로 11월까지 3회 시리즈 공연 명사와 함께하는 국악나들이! 최고의 해설진이 들려주는 국악이야기! 국립국악원(원장: 박일훈, www.gugak.go.kr)은 오는 9월 20일 ‘2009 국립국악원 해설공연시리즈 ’을 첫 시작 무대로 11월까지 3개월간 매월 셋째 주 일요일 오후 3시에 국립국악원 해설공연시리즈 ‘명사, 명인을 만나다‘ 공연을 마련한다. ‘명사, 명인을 만나다‘는 국립국악원이 2009년 상반기 '국악징검다리'에 이은 해설공연시리즈로 상반기에는 궁중음악, 민속음악(판소리), 창작음악 등 장르의 구분을 두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해설로 큰 호응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이번에는 그보다 한층 더 깊이 나아가 현재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우리음악, 우리춤을 정리하고 널리 알린 당대의 명인을 조명하는 무대로 전통무용, 민속음악, 정가의 세 장르를 선보인다. 또한,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3명의 명사들과 장르별 전문가들의 해설을 대담 형식으로 꾸며, 유쾌한 수다를 즐기듯 편안한 마음으로 명인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면서 국악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명사, 명인을 만나다‘공연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혼란했던 시절에 우리 음악과 예술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명인들의 삶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첫공연, 9월 20일 오후 3시에 첫무대를 여는 에서는 전통무용의 무대화에 평생을 바친 한성준의 일대기와 함께 그의 무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설 공연 형식으로 선보인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자 MBC TV ‘이경규가 간다’의 ‘청소년 지킴이’로 잘 알려진 강지원 변호사가 사회자로, 한국 춤 문화자료원 운영위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해리가 해설자로 나선다. 일제강점기라는 격변의 세월 속에서 전통 무용을 지키고 무대화에 힘쓴 한성준은 당대 최고의 명고수이자 명무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전통무용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성준이 무대 양식화 시킨 대표적인 춤인 승무, 학춤, 태평무를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들이 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악단의 반주에 맞추어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한성준이 가장 아꼈던 춤인 태평무는 ‘왕실의 번영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하여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을 담은 창작 무용이다. 궁중 왕비의 의상을 갖추고 추지만 궁중 정재가 아닌 민속무용으로, 경기무악에서 유래한 토속적인 가락과 10박의 징 장단에 맞추어 경쾌하게 춤을 춘다. < 3인 3색 함께 이끌어 나가는 해설공연 > 이외에도 10월공연에는 평생을 박물관 사업과 고서 수집 등에 매진하면서 전천후 문화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11월에는 어려운 이웃들과 사회 복지를 위해 헌신해 온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회자로 관객들을 대신해 국악의 궁금증을 관객의 눈높이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각각의 공연에는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교수인 김일륜,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조순자씨가 국악에 보다 쉽게 접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 시리즈 공연일정 [ 10월 18일 오후 3시 樂星 지영희 ] 초청명사 김종규(한국박물관 협회 명예회장), 해설 김일륜(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교수) 민속음악의 별, 지영희의 화려한 일대기가 조명된다. [ 11월 15일 오후 3시 善歌 하규일 ] 초청명사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해설 조순자(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가곡의 대표적인 명창 하규일의 예술세계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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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소리 우리춤" 8. 22● 일 시 : 2009년 8월 22일(토). 15:00 ● 장 소 :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연악당) ● 주 최 : 국립부산국악원 ● 입장료 : 하층(S,A석) : 8,000원 ● 문 의 : 051-811-0040 ■ 공연 내용 및 출연자 0일 시 : 2009. 8. 22(토) 15:00 0장 소 : 대극장(연악당) 1. 현악영산회상 ‘하현도드리’, ‘염불도드리’, ‘타령’ `Hahyeondodeuri`, `Yeombuldodeuri`, `Taryeong` in Yeongsanhoesang(Court Music) 영산회상은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단소, 세피리, 양금, 장구의 조촐한 구성으로 연주하는 풍류방 음악이다. 영산회상은 모두 아홉 곡으로 구성되는데, 하연도드리, 염불도드리와 타령은 이 중 제 6·7·8곡에 해당된다. 하현도드리와 염불도드리는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고, 6박 한 장단의 도드리장단이다. 타령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었고, 12박 한 장단의 타령장단이다. 낮은 음역에서 느리게 진행되는 하현도드리에 이어지는 염불도드리는 비교적 가뿐한 선율로 진행된다. 제2장 후반부에 이르러 속도가 빨라지다가 자연스럽게 경쾌한 타령으로 연결된다. 2. 판소리 춘향가 중 “옥중가” Pansori Chunhyangga(Song of Chunhyang) `Song of Being in Jail` 판소리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성춘향과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신분을 뛰어 넘는 사랑을 그린 판소리다. 춘향과 몽룡의 만남에서 시작해서 춘향과 몽룡의 사랑의 언약과 이별, 신임사또 부임과 춘향의 고통, 몽룡의 과거급제와 남원행, 신임사또의 생일잔치와 어사출도, 춘향과 몽룡의 재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 주요 대목으로 적성가, 사랑가, 이별가, 옥중가, 암행어사 출도 등이 꼽히는데 오늘은 옥중가 대목을 감상해 본다. 3. 최승희류 검무 Geommu(Sword Dance) 본래 는 상고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용의 하나로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데 생활의 일부로서 수렵, 전투를 위해 그 쓰임새가 많았음을 추측 할 수 있다. 최승희류 검무는 1934년 창작되었다. 무사의 검무 즉 원형이 담고 있었던 검술의 정신과 남성적이며 무예를 닦는 기의 결지를 토대로 하여 오늘날 김백봉은 이를 다시 재안무하고, 군무로까지 확장하여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승희의 검무가 가지는 특징은 조선시대 이전의 원형이 지녔던 정서적 특징을 복원하고 이에 바탕을 둔 창작을 시도 했다는데 그 차별성이 있다. 4. 2중주 대금과 구음시나위 Daegeum and Gueum Sinawi 구음시나위는 시나위 합주에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 소리처럼 어울리는 곡이다. 구음(口音)이란, 말 그대로 ‘입소리’이다. 구음은 가사없이 ‘아~~으~~어~~’ 등의 모음의 변화만으로 즉?적인 가락을 지어낸다. 이때 일어나는 극적인 감성의 표출 효과는 시나위 합주의 강한 원시성과 생명력을 전해준다. 구음시나위는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대에서 공연될 때는 피리·대금·해금·아쟁·가야금·거문고·징·장구 등의 악기와 함께 연주된다. 오늘은 특별히 대금과 구음의 2중주로 구성되었다. 5. 25현금 중주 `Let it be`, `Hey Jude`, `Obladi Oblada` 25-stringed Zither Quartet `Let it be`, `Hey Jude`, `Obladi Oblada` 영국의 리버풀 출신의 세계적인 그룹 비틀즈의 히트곡인 `Let it be` `Hey Jude`, ‘I wanna hold your hand`, `Obladi Oblada`등의 곡을 가야금의 선율로 들어 볼 수 있는 곡이다. 숙명가야금연주단 3집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전통의 12현에서 25현으로 개량된 가야금 4중주로 연주되는데 가야금 파트별로 저음, 중음, 고음, 주 선율 등으로 나뉘어져 연주된다. 오늘은 선율을 담당하는 가야금 외에 젬배, 콩가 등의 라틴퍼커션이 함께 리듬을 담당하여 연주하며, 25현금으로 편곡된 새로운 구성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6. 학춤 Hakchum(Crane Dance) 경상남도 일원의 덧배기춤 가락을 바탕으로 청초하고 우아한 학의 모습을 빗대어 고고한 선비의 기품과 출렁이는 신명을 담아내는 한량들의 장기춤의 하나이다. 한국의 `조류의 춤`으로서는 학춤이 유일한데, 여기에는 동래학춤 이외에 궁중학무와 한성준(韓成俊 : 1874~1941)류 학춤이 있다. 고려 때 향악정재로, 또 조선 때 〈학연화대처용무합설〉로 전승·발전해온 궁중학무는 학의 동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동양적 우주운행의 원리를 내포한 우아하고 정제된 대무형식의 연례무(宴禮舞)이다. 궁중학무의 음악과 춤사위를 바탕으로 1900년대에 새로이 창작한 한성준류 학춤은 학의 생태를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이를 창조적으로 자신의 춤세계에 총합한 전문 예인의 명품이다. 그러나 동래학춤은 궁중학무나 한성준류 학춤과는 계통을 달리한다. 오늘 작품은 동래학춤에 바탕을 두어 국립부산국악원 엄옥자 예술감독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7. 남도민요 “뱃노래, 동해바다” `Baennorae(Boating Song)`, `Donghaebada(The East Sea)` (Folk songs of Jeolla Province)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 부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남경장사 선인들에게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인당수로 가는 뱃길에 사공들이 부르는 노래로 이 대목을 민요로 새롭게 만들어 부른 것이다. 느린 진양장단으로 ‘어기야 어기야’로 시작해서 자진모리로 끝을 맺게 되는데 통속민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동해바다는 신민요로 젊은 층의 일반인들에게 많이 불려지고 사랑받는 민요로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지역에 잘 맞는 곡이다. 8. 모듬북과 사물놀이 ModeumBuk and Samullori(Percussion Quartet)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인정받은 사물놀이에 웅장하고 다양한 소리를 내는 모듬북을 결합하여 만든 작품으로 내고, 달고, 맺고, 푸는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한국 고유의 음악적 특징이 가장 잘 들어난 작품이다. 변화무쌍한 다양한 리듬들과 폭발적인 사운드에 연주자들의 역동적인 동작에서 한국의 신명과 멋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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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삼현육각의 풍류 11 월 29 일일 시 : 2008 년 11 월 29 일 (토) 오후 7시 30분 장 소 : 전주전통문화센터 로비 [http://jt.or.kr] 문 의 : 063-280-7006 1. 전라삼현 '농삼현' 농삼현은 관아에서 하던 삼현으로 우조에 가깝고,1984년 4월 전북예술회관에서 27년만에 재현공연되었다.일제하 정읍권번에서 무용과 음악을 가르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던 정자선 선생의 기예를 모두 물려받은 선생의 자제, 정형인선생에 의하여 전통이 이어졌고, 현재는 그의 기예를 물려받은 제자인 전태준에 의해 전주농삼현의 음악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영산 -염불 -마두군악 -굿거리 -자진굿거리 (대금 이항윤, 조용오 , 피리 박지중, 조송대, 이재관, 해금 고은현, 장고 조용안, 좌고 김인두) 2. 전라삼현 '무곡' 전라삼현 원곡 중 본영산, 염불, 굿거리, 본영산을 전조시켜 대금, 단소, 양금, 거문고, 가야금, 장고로 구성한 곡이다. 무용반주를 위해 구성한 곡으로 현재는 전주 학춤반주음악으로 연주되고 있다. (단소 이항윤 양금 김정은 대금 조용오 가야금 조보연 거문고 위은영 장고 조용안) 3. 경기대풍류 관악기 중심으로 연주하는 을 가리킨다. 대풍류란 대나무로 만든 악기인 관악기가 편성의 중심을 이룬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대풍류는 향피리2(목피리와 곁피리), 대금1, 해금1, 장구1, 북1로 구성되며, 이를 '삼현육각' 또는 줄여서 '삼현'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무용반주에 쓰이던 편성으로, 을 비롯하여 이나 등의 음악이 모두 대풍류 편성으로 연주하던 곡이다. (대금 이항윤, 조용오 피리 박지중, 조송대, 이재관 해금 고은현 장고 조용안 좌고 김인두) 4. 전라삼현 '승무' 승무는 인간 내면의 심성을 표현하는 춤으로 민속무용 중 가장 대표적인 춤이다. 전주지방에서 추어졌던 승무는 전라삼현 음악에 맞추어서 추는데, 다른 지방 승무와는 형식에서 조금 다르다. 염불, 반염불, 굿거리, 북 놀음, 타령 순으로 이루어지며, 당차면서도 활기찬 동작이 특징이다. 전주농고에서 정형인 선생님이 가르치시던 승무가 유일하게 남아있어 그 승무를 토대로 구성되었다. (승무 문정근 대금 이항윤, 조용오 피리 박지중, 조송대, 이재관 해금 고은현 장고 조용안 좌고 김인두) 출연진 대금 : 전태준 (전라삼현육각 보존회장), 이항윤(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수석) 조용오(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부수석) 피리 : 이정렬(전라삼현육각보존회 고문), 조송대(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수석) 박지중(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 이재관(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 해금 : 고은현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 장고 : 조용안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지도위원) 좌고 : 김인두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수석) 가야금 : 조보연 (전라북도립국악원 과현악단 단원) 거문고 : 위은영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수석) 양금 : 김정은 (전라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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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립국악단 '한가위 香演(향연)' 9 월 14 일일 시 : 2008 년 9 월 14 일 (월) 19 시 30 분 장 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문 의 : 031-729-4810 프로그램 1. 판소리 “흥보 박타는 대목” 판소리 : 안숙선 / 고수: 박정철 유네스코로 지정된 판소리 5마당 중 가장 해학 적이고 서민적인 노래가 바로 흥부가이다. 그중에서도 흥부 박타는 대목은 눈대목으로 꼽히며,극적인 성격이 강해 창극으로 많이 공연되는 대목이다. 느리게 시작해서 빠르게 넘어가는 박타령과 중중모리 장단의 구성진 돈타령을 명창 안숙선의 소리로 감상한다. 2. 가야금 합주 “모리” 작곡 : 박범훈 / 연주 : 시립국악단 “모리”는 몰아간다는 뜻으로 장단의 의미이기도 하다. 작곡가 박범훈은 장단의 역동성과 생동감을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통해 표현하였으며 곡의 대부분의 장단을 경기도 무속 가락의 독특한 구조를 빠르기와 리듬의 혼합으로 재해석하였다. 경기도 무속가락 중 엇모리를 모체로 사용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3. 전통무용 “학춤” 안무 : 김장우, 박종호 / 거문고 : 이용우 가곡 : 서정화 / 연주 :시립국악단 학춤은 부산의 동래에서 예로부터 황새가 많아 주민들이 황새의 모습을 관찰하여 학의 청초함과 우아한 몸짓 등을 소박한 민속의 율동에 담은 춤이다. 민속무용 중 조류(鳥類)의 동태가 율동화된 유일한 춤으로, 궁중무용 중 학무(鶴舞)에 비해 민속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타악기가 중심이 되고, 굿거리장단으로 반주한다. 4. 경기민요 연곡 민요 : 김혜란외4명 / 연주 : 시립국악단 (풍년가,방아타령,사설난봉가,잦은방아타령) 우리 나라 민요는 각 지방마다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경기민요는 다른 지방의 민요보다 흥겹고 음색이 맑고 깨끗하며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이 하여 풍요로운 추석에 맞는 민요로 선정하였다. 구성진 소리꾼 김혜란의 목소리가 경쾌하고 화사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5. 국악관현악 한가위를 위한 서곡 “회소곡” (초연) 작곡 : 이화동 이 곡은 ‘회소곡’을 연상하며, 옛 여인들이 춤과 노래로 한가위를 즐겼던 한과 멋을 감흥으로서 풀어내고자 하였다. 전반부는 길쌈놀이에서의 패배에 대한 여인의 슬픈 한을 표현하였고, 후반부는 한가위의 풍요로움 속에서 여인들의 한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선조들의 멋과 슬기로움을 표현하였다. 6. 국악가요 편곡 : 조원행 / 노래 : 김용우 (임진강,사발가,통일아리랑) 7. 가요 편곡 : 조원행,김만석 / 노래 : 심수봉 (비나리, 사랑밖에 난몰라, 무궁화) 8. 남도 신민요 편곡 : 이용탁 / 소리 : 안숙선외4명 (달맞이 가세, 팔월가, 동해바다) 전통민요를 바탕으로 편곡하거나 새로이 창작된 곡을 신민요라 하는데 오늘 불리워 지는 남도 신민요는 추석에 어울리는 달맞이 가세 ,8월가와 동살푸리 장단의 흥겨운 동해 바다로 넘어 가면서 추석의 풍요로움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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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자락 초록음악회 '꽃보다 아름다워' 6 월 1 일일 시 : 2008 년 6 월 1 일 15 시 장 소 : 별맞이터(국립국악원 야외공연장) 문 의 : 02- 580-3300 사 회 : 윤중강(방송인,국악평론가) 프로그램 정재 '학연화대무'(국립국악원 무용단,정악단) 청학과 백학의 학춤이 우아하고 기품있는 연화대무대가 합하여진 궁중무용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이다. 경기민요'천안삼거리,태평가,창부타령'(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맑고 부드러운 음색과 거뜬거뜬한 선율로 부르는이와 듣는이 모두 흥이나게하는 경기민요 연가 정재 '포구락'(국립국악원 무용단,정악단) 무용수들이 포구문에 공을 던져 넣으며 추는 춤으로 성공하면 꽃을 받고 실패하면 얼굴에 먹칠을 하게되는 유희적인 작품 실내악 '꽃의동화'(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아기자기한 멜로디로 마치 꽃이 흩날리는 시골길을 거니는 듯 몽환적인 애환의 곡 판소리 심청가中 '화초타령'(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송전자가 황후를 여의고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꽃을 가꾸며 그 특징와 아름다움을 열거하는 대목 창작무용 '단오선'(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오를 준비하는 여인네들의 아름다운 활력과 실용적인 풍속이 담긴 춤 창작곡 'FLOWERS OF K'(국립국악원 창작악단) 한국에 피는 아름다운 꽃 한국여성을 이미지화한 곡으로 태평소의 멜로디와 타악의 어울림이 매력적이다. 창작곡'아침을 두드리는 소리'(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새벽이 다가와 아침에 열리는 이미지는 회화적 감각으로 표현한 곡으로 전체 4악장 中 2악장과 4악장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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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정기공연 [시조창무극] "정가(正歌)의 진수(眞髓)와 한국인의 멋" <12월 2일>제11회 정기공연 [시조창무극] 우리얼 우리가락을 찾아서... "정가(正歌)의 진수(眞髓)와 한국인의 멋" ● 일시 : 2006년 12월 2일(토) 늦은 7시 ● 장소 : 부산문화회관 중강당 ● 주최 : 한얼정악연구소, 송이한복연구원 ● 주관 : 교사시조연구회, 김정원의 춤소리 예술단, 정다회 ● 후원 : 부산 MBC, 부산일보 ● 프로그램 [1부] 정가감상 ㅁ 가곡(歌曲) - 해설 : 박명화(부산대신중학교 교사) - 반주 : 채수만 외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 춤 : 김정원(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 종합대상 국회의장상 수상자) 1. 우락(바람음) - 창 : 정인경(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가사이수자 /전국 정가경창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2. 언락(벽사창이) - 창 : 예찬건(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전수자 / 전국국악경연대회 일반부 정가부분 대상수상) ㅁ 가사(歌詞) - 춤 : 춤소리예술단 1. 매화가 - 창 : 김가인(상당초등학교) - 한얼정악창무극단 2. 죽지사 - 창 : 정인경(중요무형문화재 제41회 가사이수자 / 전국 정가경창대회 대통령상 수상자) ㅁ 시조(時調 : 풍류) - 창 : 이희재(부산대 국악과 / 전국정가경창대회 일반부 가곡, 가사부문 금상수상) - 창 : 조수연(부산대 국악과 / 전국정가경창대회 가곡부 최우수상[문화재청장상]) - 가야금 : 강현정 / 대금 : 채수만 / 춤 : 장 미 / 선비 : 김형철 / 하인 : 박순이 1. 평시조 2. 우시조 [2부] 한국인의 멋 ㅁ 돌맞이 다례 이 무대에서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첫돌을 맞는 날, 이웃집 친지들을 초청해 아기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덕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던 선조들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 창 : 여창지름시조(부산교사시조연구회) ㅁ 한복쇼 중허리시조 - 창 : 이영숙(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 전수자 / 신라문화재 전국 시조경창대회 명인부 장원) ㅁ 특별출연(가야금병창) 창작민요 - 출연 : 예림국악예술원생(지도 : 김현주[국악협회지부장]) ㅁ 우리춤 1. 시조창과 학춤의 만남 - 창 : 박수진, 정유정 2. 긱 시조 - 주인 : 김말자 - 헌다인 : 노명자, 김화숙, 강옥희, 정선화 - 학 춤 : 김화숙, 이금숙, 전애경, 김혜영, 주미영, 서정향 3. 소고춤 - 김정원(춤소리 예술단 대표 외 문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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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ance 2005-전무후무일 시 : 2005년 10월 8일 ~ 9일 장 소 :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춤을 오늘에 전해준 춤꾼들이 세월을 삭혀 만든 최고의 명무를 감상하는 반열의 한 판! 이 땅의 전통춤은 구한말의 재인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춤을 오늘에 전승한 것이다. 가교 역할을 맡은 제1 세대의 춤꾼들은 이제 8,90세의 최고 원로로 살아 숨쉬는 멋이 가득하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예인과 세월 속에 잠적하여 그간 존재를 알지 못했던 명무(名舞)가 함께 출연하는 귀한 무대이다. '전무후무(全舞珝舞)'란 가장 완전한 춤을 이룬 진정한 명인의 춤이라는 의미로, 완전할 전(全), 춤 무(舞), 옥 이름 후(珝), 춤 무(舞). 평균 나이 80세가 넘으니 우리시대에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판이 될 것이요 이후에 다시 꿈꿀 수 없는 반열의 판이 될 것이다. 이 공연을 위하여 조어된 말이고 후엔 이 공연을 기념하는 말로 남을 것이다. '들어올린 손끝 하나에, 내쉬는 호흡 한 자락에 인생과 연륜이 담긴 춤'으로 1998년 제1 서울세계무용축제 당시 프랑스 태양극단 연출자 아리안 무누슈킨과 브레멘탄츠테아터의 안무가 수잔 링케의 눈물을 자아내게 만들고 '육신은 날아가고 영혼이 춤추는 것 같아 . . .' 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만든 춤들이 다시 선보인다. 강선영 (1924~)의 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92호 예능보유자로 1988년 지정.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성대와 풍년을 축원하는 춤으로 빠르고 활기찬데다 춤장단이 복잡해서 음악을 알지 못하면 춤을 만들 수도, 출 수도 없다. 강선영은 13세에 한성준 고전무용연구소에 입소하여 승무 태평무 한량무 신선무 학춤 검무 등을 배웠고, 특히 한성준에게서 태평무 전체를 익힌 유일한 생존자. 19세에 한성준 무용단 부민관 공연에 출연하기 시작하여, 1953년 스승에게 배운 검무 살풀이춤 승무 바라춤을 조합하여 로 제1회 발표회 개최. 1998년 안성에 태평무전수관 건립. 이매방 (1927~)의 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로 지정된 대표적인 한국 전통춤. 아비뇽축제에 참가하여 르 몽드지로부터 '성스러운 타악기와의 대화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온 몸에 축적된 에너지가 춤을 통해 숭고한 손 주위로 번지고 북채를 통해 밤으로 펴지는 음악이 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승무는 장관을 이루는 북가락, 세찬 장삼놀음, 빼어난 발디딤새의 춤으로 우리나라 민속춤의 정수라 할만큼 품위와 격조가 높은 춤. 선새의 승무는 유려하게 흐르는 춤의 조형적 선,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의 세계를 그려낸 춤이다. 문장원 (1917~)의 은 첫 발을 떼는 춤이고, 일생을 송두리째 바쳐 완성해 가는 춤이다. 특정한 구성 없이 즉흥적으로 추어진다. 걷노라면 자연스레 밟히는 엇박은 관객의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남은 폐활량을 한데 모아 추임새를 뱉게 한다. 청송이 우거진 해변과 인적 드문 제실 등 놀이판에서 당대 최고의 명무였던 김기옥 김귀조 최소학에게 즉흥춤을 배웠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 야유 보유자. 김수악 (1926~)의 은 맨손으로 굿거리춤을 추면서 자진모리 대목에 소고춤을 엮어서 추는 전형적인 기방형의 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예능보유자 지정. 10살에 진주 권번에 입적하여 본격적인 예능을 연마. 유성준 정정렬 이선유 김준섭 등에게 판소리를, 김종기 강태홍 이순근 박상근 등에게 가야금 아쟁 등 기악을, 한성준에게 승무를, 김녹주에게 소고무를, 최완자에게 굿거리춤 입춤 검무를 배웠다. 장금도 (1928~)의 민살풀이춤는 보통 살풀이춤이 수건을 들고 춤을 추는 반면 수건을 들지 않는 맨손으로 춘다하여 '민'자를 붙였다. 장단의 흐름은 살풀이 장단, 자진모리 장단, 다시 살풀이 장단으로 이어져 살풀이춤과 동일한 데, 가끔 흥이 나면 동살풀이춤까지 가미하기도 한다. 현재 유일한 전승자. 12살에 소화 권번에 입학하여 군대식 교육을 받았다. 김준섭 민옥행에게 소리를, 최창윤에게 승무를, 김백용에게 검무 화무 포구락을 배웠다. 특별한 춤사위를 내놓지 않으면서도 점점 멋을 더해가면서 장단을 이끄는 춤, 그래서 절대적으로 장단이 중요하다. 김덕명 (1924~)의 학춤은 옛적 출입하던 한량의 복장으로 추는 너울너울 학 같은 춤이다. 경남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 예능보유자 지정. 훨훨 날다가 내려앉아 두루두루 먹이를 살피다 일순 획 낚아채는, 학의 상태를 오로지 선비의 차림으로 완벽하게 형용해 낸다. 학에 대한 정교한 모의를 가능케 하는 것은 탁월한 '디딤새' 때문이다. 83세 고령임에도 장전을 들어올릴 때 한치의 기울어짐 없이 단정하고 그 장단 속에 숨겨진 '대삼소삼'을 확실히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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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함께한 70년-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무제 문서 춤과 함께한 70년-명가 강선영 불멸의 춤 장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일시 : 2005년 4월 22일(금) 19:30 한성준• 강선영 그리고 「태평무보존회」 제자들로 이어지는 3代의 우리춤 1부 천추예전(千秋藝專), 故한성준 선생의 춤을 잇는 100년의 가교 우리 근대춤의 시조인 故한성준 선생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날수 있는... 40여작품에 이르는 전통춤을 집대성, 무대양식화를 통하여 전통춤 영역의 자율성을 확립한 것이나 경기류(한성준류)라는 뚜렷한 한국 춤계보를 형성, 우리 춤의 독특한 춤미학을 지향해 나간 점, 보다 전문적인 전통춤 전수체계의 기틀을 마련한 점, 그리고 당대를 풍미한 신무용의 창조적 지평확산에 뚜렸한 족적을 남겼다는 점 등은 한성준 선생의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업적을 기리며 우리 근대춤의 시조인 故한성준 선생의 작품들(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등)을 모아 강선영 헌정 70년 기념무대를 마련한다. 100여명의 출연인원이 선보이는 그 시절의 음악, 동작, 의상 등이 철저한 원형 재현으로 그 이목이 집중되는 공연이다. - 태평무, 학춤, 장고무, 훈령무, 한량무, 검무, 승무, 즉흥무 2부 목란의 꿈, 불굴의 나날로 피워낸 무법(舞法)•예법(藝法) 국내 최초로 국립영화제작소에 의해 영화화 되어 일본 도쿄아세아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한 춤공연(초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현장에서 이루어 진 작품(원효대사), 무용극(모란의 정, 황진이 등)의 형식 등 우리 무용사에 길이 남을만한 작품들이 많다. 그 중 7작품을 선정하여 작품의 일부분이 감동의 시간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 초혼, 원효, 무당춤, 살풀이춤, 황진이 스승에 대한 존경과, 제자 사랑이 어우러지는 춤무대 강선영 선생의 주옥같은 작품 중 7작품을 선정, 이 작품들을 재구성하여 제자들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무대는 강선영 선생에게 헌정하는 보은의 무대이기에 더욱 각계의 관심이 뜨겁다.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답이라도 하듯 강선영 선생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레파토리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각 학교에서는 이번 공연을 한 작품씩 공연함과 동시에 레파토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제자 사랑에 대한 스승의 마음과 스승의 정신을 정성껏 이어가는 헌정의 무대의 귀감을 펼쳐보일 예정이다. 정상급 중견 무용가들의 대 성연 우리 무용계의 큰 어른인 강선영 선생의 헌정무대는 100여명이라는 출연 인원과 그 출연진만 보아도 이목이 집중되는 공연이다. 1부의 작품들은 태평무 이수자이기도 한 김덕수 사물놀이가 현장연주와 함께, 무대에서 춤을 추는 무용가들은 이현자(태평무준보유자). 이명자(태평무전수조교, 대진대학교 교수), 양성옥(태평무전수조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 교수, 제주도립무용단 안무자), 조흥동(경기도립무용단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김근희(대진대학교 교수), 김미란(태평무전수관무용단 단장), 임학선(성균관대학교 교수), 김덕수(한울림 대표), 정혜진(예원학교 교사), 한경자(강원대학교 교수), 양승미(국악예고 교사), 손병우(예원대학교 교수), 배상복(서울시립무용단 훈련장)등 현재 한국의 무용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있는 중진•중견 무용가들이다. 각자 개인공연을 통해 활발히 활동을 하고있는 이들을 모처럼 한 자리에 아우르는 큰 춤판이 될 것이다. “이번 무대는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다.” 오늘, 기쁜 마음으로 무대에서 조명을 기다려 본다. 그리고 나는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절세의 고수, 전설의 명무'로 일컬어지던 한성준선생을 만나 춤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고 1940년 서울 부민회관 무대에 선 이래 일본과 북만주 일대에 진출, 지금까지 170여 개국에서 1,000여회가 넘는 혁혁한 해외공연 기록을 세우고 있다. 타고난 안무가적 기질로 수없이 많은 무용극을 안무해왔고 그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는 ‘몸과 마음이 일치된 예술 춤’이라는 찬사와 함께 '한국 명무'의 반열에 올라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로서 당대 개인의 이름으로 자신의 춤을 이어갈 태평무 전수관을 이룩한 것도 우리 무용계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개인적인 영달로는 문화예술계의 중요요직과 공직을 두루 거치면서 입신과 출세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문화예총연합회 회장,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여성정책 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문체위원, 당무위원, 여성문제연구위원장,여성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이런 경력은 무용인으로서는 건국 이래 처음이다. 프로그램 1부. 한성준류 춤공연 태평무 출연 : 강선영 외 태평무회원 중요무형문화재 제 92호로 지정된 한성준 선생의 태평무는 강선영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의젓하면서도 경쾌하고, 가볍고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힘과 신명, 기량의 과시가 보이는 춤이다. 반주음악으로는 경기도당굿에서 행하여진 무속장단에 바탕을 둔 낙궁, 터벌림,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도살풀이 가락으로 되어있다. 학춤 출연 : 송영환 외 2명 강선영으로 이어지고 있는 학춤은 한국의 설화를 기초로 한 한성준 선생의 신선무 중 일부로 학과 공작이 함께 어우러져 노는 형상을 무대 춤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신비로우면서도 기품 있고 우아한 춤이다. 장고춤 출연 : 양성옥, 김난현, 유영란, 강윤선, 송영환, 김정임, 조선희, 김윤주, 이승희 명고수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을 정도로 한성준 선생은 우리 민속장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경지를 자랑한 분이셨다. 한성준의 장고춤은 한강수타령에서 자진한강수타령으로 이어져 다시 한강수타령으로 끝맺음을 하는 절제미가 넘치는 춤이다. 음악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춤사위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위로 경쾌하고 절도 있는 리듬의 조화는 신명과 흥을 돋우어 낼 수 있는 인간 본연의 춤의 형태라 할 수 있다. 한성준의 장고춤은 강선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 번 무대는 군무로 재구성 하였다. 훈령무 출연 : 송종준 외 7명 훈령무는 한성준 선생이 한말 구군의 훈련모습을 연상해 만든 춤이다. 훈련의 비장한 각오가 절제된 춤사위로 표현된다. 두 명의 훈령이 펼치는 대결무 에서는 강인한 무적(武的)기상이 연상되기도 한다. 훈령무에서 감지되는 일사분란하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들을 통해 한성준 춤 미학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강선영에 의해 이어지는 훈령무는 허튼타령, 자진타령, 자진모리, 당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량무 출연 : 조흥동, 고선아, 김미란, 원정숙 남자들의 독무 형식의 춤으로 널리 알려진 한량무는 원래 여러 인물들(한량, 색시, 먹중, 주모 등 4명)이 등장한다. 한량무는 배역에 따른 연기와 춤, 그리고 장단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적 성격의 춤이다. 색시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한량과 먹중의 애정행각이 재미를 더한다. 일명 ‘엉덩춤’으로써 풍자와 해학적 요소를 더하는 주모의 과장된 몸짓도 볼만하다. 탈춤의 노장과장에서 분화, 발전된 극형식인 한량무에 내포된 민속문화적 가치를 한성준 선생이 만든 초기 한량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강선영에 의해 독자적인 형식으로 발전되고 있다. 검무 출연 : 김근희, 추연아, 송은경, 조민정, 김순의, 오윤선, 이주영, 임은혜, 오정화, 이예진, 윤보배, 홍범주, 전소연, 김진주, 김경란, 이윤희, 손민현, 김도연, 김도희, 이가을, 양한나, 피금숙, 권미화, 이미진 신라시대 황창랑 설화에 기원된 검무는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궁중무용으로 수용되어 첨수무, 공막무라는 이름으로 추어졌으며, 각 지방 교방청을 중심으로 관기(官妓)들에 의해 널리 추어져 팔도검무(八道劍舞)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성준 선생의 검무는 대륙적이며 호방한 기품이 서려있는 이북지역의 검무나 기방 예술적 기교가 강한 경남, 호남지역의 검무와는 달리 대체로 평이한 면모를 보이지만 연풍대사위에 서려있는 활달한 기상과 강한 기질은 이 춤의 특징이다. 강선영으로 이어지면서 검무는 10인(十人) 검무로 맨손 입춤과 칼춤으로 재구성되었다. 승무 출연 : 강선영 이현자, 김근희, 고선아, 김미란, 홍진희, 원정숙, 이진실, 박건희 전통춤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승무는 불교 의식무 기원설, 탈춤의 노장과장 기원설, 황진이 기원설 등으로 설명되지만 그 발생 동기는 확실치 않다. 현재 전승되는 승무는 인간 내면의 보편적 갈등과 한, 그 극복의지를 표상화 한다. 이번 무대에서 선보이는 승무는 강선영이 한성준 선생에게 승무를 사사할 당시의 춤 모습을 바탕으로 군무로 재구성 하였다. 즉흥무 출연 : 김근희, 이미숙, 홍진희, 김미란, 황의자, 한미경, 정혜진, 최미광, 이순림, 김순자, 김난현, 강미숙, 원유선, 성경숙, 박성실, 엄재경 즉흥무는 말 그대로 어떤 양식에 구애됨 없이 자유자제로 춤 출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서 춤춘다 하여 입춤(立춤) 또는 구음에 맞춰 춤춘다 하여 입춤(口춤)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수건을 들고 춘다하여 수건춤이라 일컫기도 하였다. 한성준 선생은 조선음악무용연구소 원생들의 졸업시험에 반드시 이 춤을 추도록 하여 제자들의 춤 실력과 예술가적 자질을 평가하였다. 이 때 심사는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들이 맡아했으며, 여기서 통과되어야만 한성준 선생의 다른 춤 레파토리를 공부할 수 있었고 또 공연무대에도 나설 수 있었다. 치마 저고리 차림에 굿거리, 자진모리장단에 의한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지만, 춤추는 사람의 예술적 자질을 평가하는 춤으로 강선영은 증언하고 있다. 2부. 강선영 안무 창작작품 초혼(招魂) 주역:손병우-최영숙(회상), 송종준-양승미(현실) 선녀들: 김정, 최선영, 변보미, 이수민, 이선희, 이진영, 박수정, 조정란 탈춤: 김성연, 오경아, 박민정, 김정은, 안초롱, 임해성, 조영한, 권효진, 김선희, 김유리 청사초롱: 윤성준, 윤종현 무당춤: 왕무당(김성연), 중무당(조정란, 이선희, 이진영, 박수정), 소무당(박민정, 변보미, 오경아, 최선영, 김정, 이수민, 김정은, 임해성, 조영란, 김선희, 안초롱, 권효진) 무용극 ‘초혼(작:모윤숙, 안무:강선영, 주연:강선영)’은 1965년 국립무용단에의해 초연 되었다. 원래 “초혼”은 모윤숙이 를 줄거리로 한 “山祭”라는 제목으로, 이를 다시 수정, 보완되어 1964년 일본 산케이 홀에서 재 공연을 가지면서 제목을 ‘山祭’에서 ‘초혼’으로 바꾸고 작품 줄거리도 로 수정하였다. 또한, 무용극으로서 국내 최초로 국립영화제작소에 의해 강선영 안무, 주연으로 영화화 되어 일본 도쿄 아세아 영화제에서 문화 영화부문 작품상을 받은 바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원효 출연 : 이명자, 김정학 외 8명 무용극 ‘원효(작:김의경, 안무:강선영)’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을 극화한 것으로 강선영이 요석공주역으로 출연하여 1975년 국립무용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삼국통일의 대 성업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불교가 간직하여 온 전통예술과 원효의 극적인 요소를 접목시켜 무대화 되었다. 야유다(후의 요석공주)의 남편 거진랑을 포함한 화랑들의 출전과 전사, 요석공주의 고독과 번뇌, 백제 통합의 환희, 민중 속에 우뚝 선 원효, 그리고 두 사람의 애정과 고행, 모든 것을 초월한 원효의 참 인간상과 통일성취의 환희 등으로 흥미롭게 연결되고 연화무, 출진무, 연회무, 무예무, 쌍검무, 전승무 등 군무가 장쾌하게 안무되고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의 춤이 감미롭다. ‘원효’의 음악은 작품의 성격상 고전무용이면서도 관현악곡으로 작곡되고 연주되어 무대의 현장감과 웅장함을 더해 줌으로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1976년 앵콜 공연을 갖기도 했다. 무당춤 출연 : 강선영 박진희, 조선미, 성예진, 박민영, 이지연, 송현아, 김수연, 김지영, 유지은, 최지선, 김소영, 김지희A, 김민희, 서송이, 최영빈, 김연주, 김혜련, 정보람, 오아람, 허지원, 이희진 이 춤은 민속학자 이두현 선생이 고서에서 발견한 자료 12무녀도를 바탕으로 1962년 국립무용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강선영의 대표작으로 초연 때 우리춤의 재발견과 예술춤 으로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초연 당시 라는 제목으로 토속적인 원형을 문헌과 구전전승의 양상 등을 연구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무대화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옴니버스형으로 각기 다르게 전개시킨 장면 중 가장 하이라이트인 경기굿(창부거리)와 평안도(길가름거리)를 접목시킨 새로운 작품으로 안무자의 정성과 노력이 깃든 수작으로 안무라는 창작행위와 민속의 원형의 개념을 확인케 해주는 예이다. 살풀이춤 출연 : 강선영 이명자, 고선아, 이화숙, 임성옥, 유정숙, 양승미, 최정임, 최영숙 강선영의 살풀이 춤은 아기자기하면서 섬세하고 절제된 기교가 특징이고 담백한 소박미와 한과 멋, 즉흥성이 강하고 외적인 미의 형상화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며 정중동의 미가 극치를 이룬다. 황진이 출연 : 이화숙, 손병우 외 전통예술원 9명 무용극 ‘황진이(작:김지일, 작곡:박범훈, 안무:강선영)’는 기녀 황진이의 일생을 극화한 것으로 1982년 국립무용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황진이가 자신을 흠모하던 이웃 총각의 죽음을 계기로 기녀가 되어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운명적 비극을 깨닫게 되어 폭포수에 몸을 던짐으로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6장으로 구성되었다. 안무자 강선영은 황진이를 선각자로 해석하면서 무언극의 줄거리보다 춤을 위주로 한 무용극이라는데 의미가 크다. 이러한 작품구성과 안무 의도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무용극 형식을 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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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땅에서일자 : 2004-08-14 18시 장소 : 한전아트센터 주최 : 나고야 놀이판 공연소개 : ‘축제의 땅에서’ 장고를 통해 민족을 알았던 자이니치(在日), 그들을 가르친 한국의 꾼들이 벌이는 한판 태어나자 조센징이었습니다. 차라리 개나 고양이가 부러웠습니다. 상처 난 젊음은 제 이름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장구소리를 들었습니다. 심장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러나는 소리였습니다. 그 벅찬 고동 속에서 축제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제 이 축제는 내 아이가 살아가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2003. 8. 17 KBS 일요스페셜 ‘자이니치(在日)의 축제’ 로 소개된 그 아름다운 만남을 8월 14일 서울에서 만납니다. Program 1.‘비나리’와 '사물놀이' (김주홍과 노름마치) 사물놀이패 중 목이 좋은 상쇠가 나와서 쇠를 치며 하는 비나리, 쉽게 소망의 기원이다. ‘빌다’의 옛 명사형인 비나리는 일상사에 방해가 되는 여러 액살을 물리치고 그 덕으로 많은 복이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구송을 넘어 음악적 형식 위에 얹어 부르는 것이다. 자진모리 장단에 빠르게 노래하는 것을 ‘선고사’라 하여 주로 액살풀이를 하고, 세마치 분위기의 느린 장단에 노래하는 것을 ‘뒷불’, 또는 ‘뒷염불’이라 하여 축원, 덕담을 한다. 사물놀이는 풍물이 갖고 있는 많은 것들 중에서 음악적 요소가 가장 두드러진 것들만을 뽑아, 쇠, 장고, 북, 징의 악기를 4인이 앉아서 연주하는 것으로 마지막에 징잡이가 쇠를 잡으며 시작하는 ‘짝쇠’는 사물놀이를 세계음악의 중심에 서게 했다. 노름마치의 앉은반 사물놀이는 빠르기의 신축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월산가’ 등의 노래굿을 삽입하여 푸짐하고 넉넉한 맛을 낸다. 2. 덧배기춤 이윤석 (고성오광대) 경상도 일대에서 남자들이 마당에서 추는 활달한 춤을 ‘덧배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한 순서나 격식 없이 추는 허튼춤인데, 경남 고성의 ‘덧배기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固城五廣大)놀이’가 있기 때문에 자연 예전의 춤을 잃지 않고 특별한 춤사위들이 많다. 예전 벽사의식무(辟邪儀式舞)의 흔적이 있어 크고 활달한 데, 감고 푸는 맵시는 교방춤 못지 않게 정교하고 전체적으로 춤이 살짝 기울여 추는 것은 고성만의 것으로 멋이 넘친다. 경상도 곳곳의 덧배기춤이 흥했지만, 이젠 고성의 것이 화려하던 명성을 수습하여 대표하는 듯하고 1998년에 열린 세계무용축제의 ‘명무초청공연’에서 이윤석이 ‘덧배기춤’이란 이름으로 춤을 펼친 이후, 여러 판에 서면서 다시금 ‘덧배기춤’을 선명히 각인시켜가고 있다. 장단은 경상도의 엇굿거리와 덧배기장단(자진모리)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에 호적이 얹어져 나긋나긋한 춤을 이끌어 낸다. 3. 동래학춤 (나고야 놀이판, 유금선) 고로(古老)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 어떤 명무(名舞)가 당시 출입복이었던 도포에 갓을 쓰고 허튼춤을 추니 마치 학이 추는 것 같아 ‘학춤’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좀더 학답게 하려고 학의 동태를 가미하며 발전해 지금의 ‘동래학춤’이 되었다고 한다. ‘학춤’은 소매가 긴 평상복이면 언제든 특별한 꾸밈을 갖추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어서 모두들 애호하여 명무자가 많았는데, 대개는 동래지방의 관속(官屬)들이나 기방 출입하는 한량들이 주축이었고 현재는 대부분 동래야류와 연관을 맺고 있다. 원래는 독무(獨舞)이던 것이 민속경연대회에 나가는 것을 계기로 오인무로 꾸며졌고 지금은 그게 멋스러워 오인무로 갖추어 춘다. 춤의 장단은 꽹과리 장구 북 징의 풍물 악기에 ‘굿거리 장단’으로 진행된다. 이번의 무대의 학춤은 놀이판의 18인이 출연한 군무로 펼치는 꿈에 그리던 한국무대이다. 특별 출연하는 동래 본바닥 예기(藝妓) 유금선의 구음에 깃털처럼 가볍게 비상해 갈 것이다. 4. 영상 - KBS 일요스페셜 ‘자이니치(在日)의 축제 중 놀이판의 멤버 이나가끼 마사토, 그는 징소리를 사랑했고 한국의 소리꾼 장사익을 초청하여 공연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죽게 되었고 친구들은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장사익의 콘서트를 선물하였다. 1999. 2. 25일 몸 어디에도 살 한 점 남지 않은 모습으로 콘서트를 참관해 이승 친구들의 마지막 선물을 받고 5일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죽어 가는 친구를 위해 콘서트를 선물한 사람들, 멋이 사라지는 시대 멋을 아는 사람들의 멋진 판, 여기엔 재일 한국인과 양심적 일본인인이 참여한 ‘놀이판’과 한국 전통예술인의 오랜 우정이 있었다. 그 10년의 만남을 영상화한 것이 2003년 8월 17일에 방영한 KBS 일요스페셜 ‘자이니치(在日)의 축제(작가 : 문예원, PD: 김일중, 곽윤일)’ 였다. 그 감동의 영상을 10분으로 요약하여 상영하며 그간의 우정을 나눈다. 5. 용선춤 정영만(남해안별신굿-인간문화재), 남해안 별신굿 보존회 용선춤은 경남 통영에서 전승되는 전통굿인 ‘오귀새남굿’이나 ‘별신굿’에서 망자(亡者)를 태워 극락세계(極樂世界)로 인도하는 의미로 추어지는 춤이다. 통영지역의 무속은 다른 지역 보다 불교와 습속을 받아들인 흔적이 많은데, 용선춤도 반야용선(般若龍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가의 용선에 비하여 크고 화려하며 대나무로 틀을 만들고 색지를 붙인 용선(龍船)에 춤꾼이 직접 들어가서 추는 춤으로, 불교의례는 물론 다른 지역의 굿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춤이다. 무녀가 나와서 ‘신칼춤’을 추면 청과 홍의 두 대의 용선이 출연하여 무녀의 인도로 춤을 추며 넋을 서천서역국으로 인도한다. 이때 연주되는 통영시나위는 관대 굵은 통영피리의 식식한 기상과 애잔한 선율이 결합하여 수준 높은 무악을 선사한다. 특히 정영만의 구음(口音)은 자칫 사라질 뻔한 통영 선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데, 놀이판의 기둥이었던 고 이나가카마사토를 위한 해원의 의미를 담고 진행된다. 6. 살풀이춤 (박경랑) 살풀이춤은 하얀 명주수건을 들고 추는 춤으로, ‘살풀이’장단이라는 장단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살풀이장단은 무속에서 연유된 장단으로 살(煞)을 푸는 거리에서 쓰여 살풀이장단이라 하기에 이 춤은 원초적으로 굿판에서 즉흥적으로 추어진 허튼춤이라 할 수 있는데, 점차 기녀(妓女)나 창우(唱優)들의 레퍼토리로 넘어가 예술성이 가미되면서 발전했으며 동작을 맺고 푸는 형식으로 발전해가며 정중동(靜中動)의 미적 형식으로 성립된 공연 예술적 성격의 춤이라 할 수 있으며 현재 한국 전통춤의 대표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박경랑의 살풀이춤은 용선춤과 어우러져 이나가키마사토를 위한 해원의 뜻을 지닌다. 7. 호남우도농악 (나고야 놀이판) 농악은 각 지역에 따라서 각기 고유한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그중 놀이판이 공연하는 농악은 ‘호남우도농악’이다. 호남우도 농악은 예전의 지역을 구분하던 우도 지역 지금의 전라도 서쪽 평야지대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대체로(좌도에 비하여) 느린 가락 이 주가 된다. 그런즉 장단을 연주하는 자세 즉 버슴새가 발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장고놀이가 특히 출중하였다. 상쇠는 부포라고 하는 깃털을 상모 위에 쓰고 돌리며 기예를 하고 고깔을 쓰고 장고를 친다. 북의 편성은 약하거나 거의 없고 오로지 장고에 의존하며 고깔소고꾼들이 춤이 곁들여진다. 50년대 후반 연예농악으로 전환되면서 채상소고가 등장하였고 우도의 멋을 갖춘 놀이로 발전하였다. 놀이판의 농악은 처음에는 김운태 ,이후 김주홍이 전수한 것으로 호남우도의 판제를 전승하고 있다. 그간의 기량을 선보이는 부푼 첫 무대이다. 8. 채상소고춤 (김운태) 소고는 농악에 쓰이는 타악기이기인데, 가벼워 들고 연주하면서 추는 소고춤이 발전하게 되었다. 그중 전립(戰笠)에 흰 띠를 달아 돌리면서 추는 ‘채상소고춤’은 기예적인 동작이 많아 전문예인집단의 농악에 등장하는데, 소고를 두드리는 소리와 민첩한 발 동작이 조화를 이뤄 몸의 리듬과 음의 리듬이 합쳐서 흥을 이룬다. 특히 공중을 나르듯이 누워 회전하는 '자반뒤지기'는 기예의 극치이다. 김운태의 소고춤은 휘모리 장단, 굿거리, 잦은모리, 잦은가락, 동살풀이. 오방진, 휘모리, 난타, 쌍진풀이, 영산맺음으로 호남 영남 경기 지역의 복잡한 장단으로 구성되었고, 그 다양한 장단들이 점차 신명을 조여가며 판을 이끈다. 이는 김운태가 유랑농악단 시절 익힌 호남장단을 기본에 두고 후일 사물놀이패에 들어가 경기와 영남의 기예를 가미하여 자신의 바디를 만든 것인데, 현재 가장 멋스런 채상소고춤꾼으로 평가받고 있다. 9. 장사익의 소리판 (장사익, 김광석) 90년대 중반, 상여소리를 무대화한 ‘하늘가는 길’을 발표하면서 등장한 장사익은 국악과 재즈 그리고 대중가요를 한데 어우르는 크로스오버를 단번에 성공시켰다. 40대 후반의 나이로 등장한 그는 사물놀이의 반주에 ‘허허바다’ ‘삼식이’등의 토속적이며 철학적인 노래들로 장사익토리(調)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한다. 그의 대표곡인 찔레꽃, 국밥 집에서, 삼식이 등의 창작곡과 동백아가씨, 대전부르스 등 한국인의 정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대중가요를 듣는 소리판이다. 특히 그와 같이 10여년 호흡을 맞춘 기타리스트 김광석, 모듬북 김규형, 해금의 김은영 등이 모여 마무리 판을 멋지게 장식할 것이다.